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루다 Sep 11. 2022

그 소녀 이야기

할머니를 추억하며



 거울 속에 비친 여자의 눈 밑은 거뭇하게 물들어 있었다. 눈동자는 텅 비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 세상에 있지 않은 듯했다. 몸만 이곳에 서 있고, 정신은 멀리멀리 떠나버린 것만 같았다. 누구지? 이 여자는 누구인가? 생기 없던 눈동자에 의문이 피어오르는 순간, 생소한 얼굴을 보며 두려움이 몰려왔다. 거울에 비친 여자는 목덜미와 머리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내가 이렇게 생겼던가? 이리 처참한 표정을 하고 있다니.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미련이 없어 보였다. 무료한 삶이 언제쯤 끝날까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걸 보며, 나 자신을 타인 보듯 관망했다. 이런 눈빛을 어디서 또 봤더라…. 분명 본 적이 있다. 그 공허함이 안타까워 어린 나이에 측은지심이란 게 들었더랬다. 아, 할머니. 가여운 나의 할머니. 


    



 


 할머니와는 친하지 않았다. 할머니와 손녀 사이의 사랑이랄 것도 정이랄 것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만나는 건 일 년에 딱 두 번, 설과 추석인 명절뿐이었다. 경기도에서 새벽같이 출발해 귀성행렬에 몸을 실어 17~18시간을 꽉 막힌 도로에서 보낸 후 겨우 경상북도 바닷가 마을에 도착하면 캄캄한 새벽이었다. 어릴 땐 그 길이 고단하기만 했다. 지독한 멀미 덕도 있었지만, 마을에서 그리고 할머니 집에서 나는 바다 비린내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할머니는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 생선을 팔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마주하는 할머니는 나의 남동생만을 눈에 담았다. 나는 단 한 번도 할머니의 품에 안겨본 적이 없었다. 아기 때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은 그렇다. 할머니의 주방에서는 항상 비린내가 났고, 밥상 위의 반찬도 바다 생물로 가득 차 손이 가지 않았다. 할머니의 반찬과 나의 젓가락처럼, 할머니와 나의 거리도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할머니지만,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채로 지내왔다. 그나마 아는 것은 할머니의 성함과 중풍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몸이 항상 아프다는 것 정도였다.   

  


10년도 더 전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다.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을 듯이 고요한 침묵의 공기가 훅 끼쳤다. 신발을 벗고 올라선 거실에서 무심코 베란다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가시느라 한 달 정도 우리 집에 머무시는 중이었다. 둥근 모양의 회전의자에 앉아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계신 뒷모습이, 왜소한 작은 어깨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 할머니, 저 왔어요. 뭐 하고 계세요?

슬며시 고개를 돌린 할머니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몸은 그곳에 앉아 있지만, 정신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듯한 그 눈. 할머니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차 세고 있었다. 길이 이리 넓으니 차도 마~이 지나가네~


방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할머니 앞에 앉았다. 무료해 보이는 이 노인에게 뭐라도 말을 걸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묻지 않던 질문을 했다.

- 할머니, 옛날 이야기 해주세요. 할아버지랑 어떻게 결혼한 거예요?


아빠가 어릴 적 돌아가신 할아버지, 나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고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와의 이야기를 물었다. 할머니는 잠시 기억을 더듬듯 창밖의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가 봤지만 무엇을 보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마 아무것도 보지 않았을 거다. 그 멍한 눈에 정신이 돌아온 듯한 기색을 품었을 때, 할머니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 20살 때 시집와서 만났지. 김천으로.

- 그전에는 서로 몰랐어요?

- 몰랐지. 결혼할 때 처음 봤지.


그리고는 고되었던 시집살이의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어머니뻘만큼 나이 차이 크게 나는 큰 형님이 무서워 눈도 못 마주치고 숨죽여 지내던 일, 아이를 낳고 이틀 만에 밭에 나가 일한 것, 물려받은 재산을 노름으로 다 날려버린 남편,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중 진통이 와 시장 사람들이 고모를 받아낸 사연, 갓난아이 둘을 먼저 보낸 일, 명줄 짧은 남편 때문에 다섯 아이를 힘겹게 키워낸 일까지. 가슴 아픈 이야기를 덤덤하게 하는 할머니를 보며,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듯했다. 당신에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상상도 못 했어요. 정말 잘 살아내셨네요.   

  

할머니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녀의 옛 추억과 인생의 굴곡에 호기심이 일었다.

- 할머니, 첫사랑은 없었어요?

- 있었지.

- 언제? 누구?

- 18살 일본에 있을 때. 옆집 친구.

- 왜 그분이랑 결혼 안 했어요?

- 잘 안됐지...


왜인지 정확한 이유를 듣지 못한 채, 할머니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 우리 집 문을 열면 바로 그 아(아이) 집이 보였다. 가까워가 문 열고 마~이 봤지. 한 날은 폭탄이 떨어지가... 그래서 한국으로 왔지.


그러더니 할머니는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로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구슬프기도 하고 약간의 흥이 느껴지기도 했다. 



    




 할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셨다. 코로나로 국내외가 시끄럽던 초창기에 지병과 노환으로 돌아가신 건데,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되지 않아 외롭게 돌아가셨다. 임종을 앞두고 병원에서는 단 한 명의 보호자만 출입을 허락했기 때문에, 막내 고모만이 할머니의 마지막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약 6년 전부터 치매가 와 사람을 잘 못 알아보셨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몇 년 만에 만난 나는 알아보셨다. 건강이 나쁘셔서 내 결혼식에도 못 와보셨을 정도인데, 그동안 나도 나이가 들어 외형이 바뀌었는데,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았다. 내 옆에 선 남편은 친척 언니의 남편으로 착각하고, 나의 아이를 보고는 결혼도 안 한 애가 어떻게 아이를 낳았냐며 놀라워하셨다. 그런데 나는 알아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울컥 나올 때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아이와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등원하러 가는 길에도. 할머니의 눈빛이 생각나면서 마지막에 쓸쓸히 가셨을 할머니 때문에 코가 메워지고, 목이 메어왔다. 어제 무얼 먹고 어떤 일을 했는지 바로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첫사랑 이야기를 할 때는 생기롭게 반짝이는 눈빛을 했다. 가끔 그날의 이야기를 곱씹어본다. 가난을 제 몸을 가려줄 옷처럼 두르고 살았을 한 여인의 삶을.   


  

몇 달 전,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읽고 알았다. 할머니의 반짝이던 기억의 배경은 소설 속 배경과 같은 일본 어딘가의 빈민가였을 거라고. 일본 오사카 이카이노. 그곳이었거나, 아니면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어느 곳이었을 거라고. 가난은 사랑이라는 감정도 가뿐히 뭉개어 아무렇지 않게 묻어둘 수 있었던 거라고.     



할머니의 육신은 화장되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신혼집 터에 묻혔다. 아빠를 비롯한 삼촌과 고모들의 뜻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마음도 그러했을까. 할머니의 비밀 아닌 비밀을 알고 있는 나는, 그녀가 정말 그곳에 묻히고 싶었을지 의문이 든다. 분명 결혼한 후의 일을 말할 때보다 첫사랑의 기억을 이야기할 때 소녀의 모습을 보았다. 지금도 그 소녀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가난이 베인 옷을 입었지만, 금세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소녀의 모습이.


할머니는 그날,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의 수를 세어보던 게 맞았을까. 쓸쓸한 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옛 기억을 잡아 움직이는 자동차 바퀴처럼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공허했던 내 눈도 할머니를 생각하며 현실로 돌아온다.     




작가의 이전글 베스트셀러가 베스트는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