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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Sep 11. 2022

한밤의 드라이브

끔찍한 기억은 이미 사라져



 “우리 산책할까?”

저녁 식사를 하며 열어 놓은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오니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밝은 동네를 한 바퀴 걷고 싶었다. 나의 제안에 남편과 딸은 “좋아!”라고 외쳤고, 둘째는 콧물을 훌쩍이며 뒤늦게 “좋아!”라고 했다. 어젯밤부터 맑은 콧물을 줄줄 흘리더니, 코가 꽉 막혀 킁킁거리며 입술 위로 흐른 콧물을 아랫입술로 할짝대고 있었다. 급하게 티슈를 뽑아 “흥! 해. 흥!”하며 콧물을 닦아주는 날 보며 남편은 산책 대신 드라이브를 권했다. 아무래도 요즘 일교차가 심하니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 의견에 동의한 후, 우리는 재빨리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밖으로 나오니 나무 냄새를 버금은 습하고도 신선한 공기와 풀벌레 소리가 몰려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가 차에 탔다. 언제 들어온 지 모를 천장에 붙어있는 모기를 잡아낸 후, 차를 출발시켰다. 집 근처 호수로 향하며 음악을 틀었다. 선곡은 남편 마음대로. 모르는 곡도 있지만, 아는 곡이 나오면 따라 부르며 어깨를 들썩였다. 캄캄한 호수 위로 비친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신호에 차가 멈추고 전방을 바라보니 큰 규모의 편의점이 보였다. “와~ 편의점 진짜 크다!” 내 말에 남편이 “가볼까?” 한다. 아이들에게 뭐 먹고 싶은데 있는지 물어보니 큰 소리로 있단다. 신호가 바뀐 후 편의점 옆에 주차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재빨리 안전띠를 풀었다. 

“나는 그냥 차에 있을래. 다녀와~” 

“왜~ 같이 가지. 뭐 사 올까?”

“먹고 싶은 거 없어.”


남편은 신이 난 두 아이를 데리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평소 엄마 껌딱지인 둘째는 먹을 거 앞에서는 엄마와 백번이고 떨어질 수 있을 듯이 앞장서 걸어갔다.  

   

차 안에 혼자 남으니 사방이 고요했다. 가끔 옆을 스쳐 가는 차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때 앞창으로 작은 물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더니 보슬비가 내렸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빗방울은 차창에 붙어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불빛을 번지게 했다. 그리고 그때가 생각났다. 사고가 나고 싶었던 그때. 쉬고 싶었던 그때.     







 새벽 3시가 조금 넘었을까. 철야를 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회사 위치가 골목에 있어, 택시가 찾아오기 힘들까 봐 항상 조금 더 걸어 논현역 지하 출구 앞으로 갔다. 밥 먹듯이 하는 철야는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새벽에 혼자 택시를 타는 건 매우 무서운 일이다. 간혹 뉴스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식을 들을 때면 더 두렵다. 하지만 그 일도 반복이 되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논현에서 안양까지. 새벽에 달리는 택시는 총알택시다. 처음 몇 번은 이러다 사고가 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기사님께 “천천히 가 주세요.”라고 말했다. 아주 소심하게. 그런데 그날은 빠른 속도로 지나는 창밖 풍경을 멍하니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사고나 났으면. 사고 나서 입원하면 좀 쉴 수 있으려나.’ 왜인지 사고가 나서 입원을 해도 병원 침대에서 노트북과 폰을 붙들고 일하고 있을 모습이 그려져 한숨을 쉬었다. 순간 목덜미부터 시작해 등허리까지 소름이 돋으면서,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뭐야. 다치면서까지 쉬고 싶은 거야? 그런 거면 일을 그만두는 게 맞잖아.


그 일을 계기로 당시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였다. 나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내가 싫고 두려워서. 

    

그 후로 밤에 차를 타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나는 건 뭘까. 끔찍했던 기억이 아무렇지 않아 져서, 나에게 아무런 해도 되지 않아서,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떠올랐던 걸까. 이제는 밤에 드라이브하는 걸 좋아한다.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밝은 거리를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뽀로로 음료수와 젤리 봉지를 들고 차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간식을 먹게 되니 세상 행복한 표정이다. 아이들 안전띠를 한 뒤, 남편은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다시 음악이 들려오고, 우리는 함께 후렴구를 부르며 어깨를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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