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쓸모 Oct 10. 2024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일

15년 차 시니어의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

2024년 02월 22일


봄 날씨였다가 어젯밤 사이에 눈이 많이 쌓였다. 이제 15년 차에 접어드는 나 역시 ‘앞으로 어떻게 일하며 살까?’에 대한 고민이 유독 많아졌어. 그래서인지 독감 같은 겨울을 보내는 중이야.


지희가 벌써 3년 차가 되었다니 놀랍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보내는 농도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지난 편지를 통해 지희가 그동안 얼마나 농도 짙게 성장했는지 느낄 수 있었어. 이렇게 나의 생각을 물어봐 줘서 고마워. 나도 정답을 찾는 중이지만, 내가 그동안 느낀 것들을 공유해볼게.


우선 일 잘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을 시작할 때 그 일의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정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 주니어라고 할지라도 시키는 일을 그대로 수행하는 게 아니라, 멈춰서 그 일의 목표를 다시금 상기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한 거지. 나 역시 리더 자리에 있을 때 ‘대답만 잘하는 사람’보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훨씬 더 우리 팀에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하곤 했어. 세상에는 정답이 있는 문제보다 정답이 없는 문제가 훨씬 많기 때문이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신뢰 관계를 쌓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도 일 잘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야. 조직 안에서든, 밖에서든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게 되어 있어. 물리적으로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마저도 클라이언트, 고객과 관계를 맺게 되잖아. 이 관계들에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약속을 지키는 것이 필요해. 약속한 수준의 결과물을 약속한 일정에 맞춰 제공하는 것,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지.


여기서 더 나아가, 정말 일 잘하는 사람들은 본인만의 철학이 있어. 철학이라고 하면 거창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일을 대하는 자신만의 기준과 규칙 그리고 신념이라고 생각하면 돼.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가진 일의 철학을 예시로 들어볼게.


나는 디자인이 제품과 서비스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실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단순히 미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기술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작업인 거지. 또한 공간을 디자인할 때도, 시각뿐만 아니라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감각이 그 환경과 어우러져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려고 해.


일의 철학이 중요한 이유는 그게 그 사람의 고유함을 만들어주기 때문이야. 기획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스티브 잡스처럼 생각하고 일하는 기획자는 한 명뿐이잖아.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면 더 이상 ‘일을 잘한다’라는 정의에 목맬 필요도 없게 되겠지.


편지의 서두에서 독감 같은 계절을 보내고 있다고 했잖아. 어쩌면 나도 내 일의 철학을 단단히 하는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이 시기가 지난 후 더 지혜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것을 상상하면 기대도 되고. 어디서 들은 "헤멘 만큼 내 땅이다"라는 말이 생각나네. 


앞으로도 지희와 일에 대한 생각을 편지로 주고받는다면, 새로운 방식의 성장을 서로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지희는 어때? 만약 나와 생각이 같다면 회신 부탁해.

매거진의 이전글 일을 잘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