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맞는 실수를 마주하는 용기
2024년 03월 14일
지희야, 답장이 늦어서 미안.
일주일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어. 편지 받고 얼마 안 돼서, 월요일에 회사에서 주주간담회를 한다는 걸 알게 됐어. 작년 말부터 나랑 공동대표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겨 서로 조율 중이었어. 그런데 그 건을 미해결 상태로 두고 주주간담회를 진행하면, 모두에게 큰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이 된 거야. 그래서 주말 동안 합의점을 찾아보느라 모든 신경이 거기에 있었어. 사실 내가 공동대표와 소통하는 게 힘들어서 그 일을 변호사에게 넘겼었는데, 그때부터 조율 속도가 더 떨어졌어. 다행히 급한 불을 껐어.
그리고 화요일에는 이전에 운영했던 브랜딩 에이전시 법인 소유의 건물을 매각하는 계약을 했어. 임장부터 계약하고, 돈 아낀다고 리모델링 공사 직접하고, 입주해서 5년 넘게 애정을 쏟았던 건물이라 생각이 많아지더라.
작년 가을에 회사에서 큰 결정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비효과처럼 일어난 일 중 나의 몫을 감당하는 중이야. 그 당시 회사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이후 일어날 일들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로 예측하고 준비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쉽네. 그래서 지금은 문제를 똑바로 마주하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답장을 쓰기 전에 지희의 편지를 다시 읽으며, 모두가 겪는 ‘실수’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어. 우리는 과연 실수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도전과 새로운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가능할 것 같네. 그 말은 성장을 멈추겠다는 의미 아닐까? 결국 “배움을 멈추면 썩는다.”라는 나의 모토에 따라, ‘실수’는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인 부분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 그래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 “예민하거나 피곤할 때 민감한 내용이 포함된 커뮤니케이션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값진 인사이트를 얻어서 기쁘다. 그렇게 실수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만 유지한다면, 그로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일에 집중하다 보면, 예민한 상태가 되잖아. 예전에 나도 나의 예민한 상태를 인지 못 하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 그럴 때마다 회의가 원활하지 않게 흘러간다는 걸 우연히 어떤 강의를 듣고 알게 됐어. 그 후로 회의나 소통 전에 나의 컨디션과 감정을 스캔하는 습관이 생겼어. 한 번은 직원과 일대일 회의 직전에, 개인적인 일로 기분이 미묘하게 좋지 않은 상태인 적이 있었어. 그걸 인지하고, 직원에게 내가 감정 상태가 회의를 원활히 진행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으니 좀 미루고 싶다고 말했어. 그렇게 직전에 일정을 취소하는 게 미안했거든, 그런데 몇 달 후에 신기하게도 나한테 고맙다고 하더라. 오히려 자신과 자신의 작업이 리스팩트 받는다고 느꼈대. 나는 이런 과정으로, 이번에 지희가 겪은 것과 비슷한 실수를 발판 삼아 성장 동력을 얻었어. 커뮤니케이션 전의 나의 컨디션과 감정을 스캔하는 습관은 진짜 추천해.
실수도 성장하는 과정에 따라 그에 맞는 때가 있다고 생각해. 주니어에게는 어느 정도 용납이 되는 실수들이 있지. 그 시기에 많이 부딪히고 배우면, 정말 빠른 속도로 성장할 거야. 실수 후에 바로 사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지희가 멋지다. 우리, 때에 맞는 실수를 용감하게 마주해 보자.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어느 날 누군가의 실수도 품고 동기 부여도 하는 때가 올 거야.
p.s. 지희와 '일과 삶'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같이 가고 싶은 공간은 어디야? 왠지 우리의 주제와 걸맞은 장소일 것 같네. 스케줄은 문자로 정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