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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박 Feb 02. 2023

보통사람이 되기란  어렵다

평범함의 비범함 01

1987년 대선후보 시절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중 유세에서 아주 유명한 한 마디를 던진다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전혀 어려운 단어도 아니고, 낯선 한자어도 아니지만, 보통사람은 그 네 글자 단어 자체가 주는 강렬한 여운 같은 것이 있다. 보통사람이란 다른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노태우 후보가 혹시 다른 단어를 썼더라면 그 여운과 임팩트는 엄청나게 줄어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정상인, 민간인, 평범한 사람, 평균적인 사람, 무난한 사람, 범인(凡人) 등등....

“저 무난한 사람 노태우입니다, 믿어주세요” 하면, 과연 투표해 줄 사람이 있었을까?


물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군사정권의 군인 출신 전임자들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보통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조금이라도 권위의 무게를 내려두고 대중에게 본인을 각인시키기 위해 그 단어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인에게 필자가 직접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1987년으로부터 36년이 지났다. 

그동안 대통령이 7번 바뀌었고, 9번의 올림픽, 9번의 월드컵이 있었으며, 필자가 태어나고도 32년이 흘렀다. 그때는 없던 SNS, 스마트폰, 인터넷 등등 인간사회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보통사람"이라는 말의 의미 또한 변하지 않았을 리 없으리라.


과거에는 위인전 전집에 늘어선 이름들이거나, 뉴스에 자주 나오는 기업가, 톱스타 정도가 있었다면,

이제는 미디어의 종류도 늘었으며, 플랫폼 또한 다양하게 존재하고,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도 무궁무진하게 많아졌다. "저 사람 텔레비전에 나왔어"라는 말을 해도 누군지 모를 확률은 매우 높지만, "100만 유튜버다" 하면 그 사람을 알 확률이 오히려 높아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드러낼 방법이 다양하고 많아지다 보니, "특별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이 더 모호해졌고, 여러 직업들의 위상도 과거에 비하면 변한 것이 많아졌다. 아무 직업이나 생각해 보라, 10년, 20년, 30년 전의 그 직업의 위상과 현재 2023년의 위상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없어진 직업도 많고 새로 생긴 직업도 많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MZ세대가 어떻니, 열정이 어떻니, 개인의 가치를 존중해 주는 것이 어떻니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줄 세우는 것을 멈출 수 없고, 스스로가 어쨌든 평균이나 그 이상에 위치해 있기를 바란다. "나는 평균 이하로 살래" "나는 하위 10%를 목표로 하고 있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유전자는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하지 못하고 사라졌을 테니까.


표준 정규분포표, 그러나 우리 모두를 여기에,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다 밀어 넣어 줄을 세울 수 있을까?


그런데 보통사람이 되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

(1) 보통을 정의하기가 무척 어렵고

(2) 정의를 하더라도, 다른 지역이나 연령대 혹은 다른 문화에서도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고

(3) 애초에 '보통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일수록 시간이 걸린다. 답이 명확한 수학문제도 어려워지면 시간이 걸리고 수식이 길어진다. 거기에 인간이, 사회가, 문화가, 생각이 더해지면 사실상 더 파고들기도 싫어진다. 

하지만 철학이 사라진 이 시대에 나는 좀 더 이 문제에 다가가서 우리의 생각하는 방법과 사는 방법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 평범함에 대한 고찰은 사람들에게 '욕심을 버리고 살라'라는 식의 없느니만 못한 조언을 투척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평범함이란 굉장히 비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업적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람들은 경의를 표한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번다든지, 세계적인 명성을 쌓는다든지, 아니면 엄청나게 많은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보통'과는 거리가 멀수록 사람들은 경의를 표한다. 

나 또한 보통사람을 목표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꿈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보통사람입니다"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대선후보가 유세 중에 '보통사람'이란 말을 킬링워드로 삼은 이유에 대해 생각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100년 뒤의 위인전에 리오넬 메시,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등등이 오를지, 아니면 침착맨같은 유튜버가 오를지 모른다. 당신이 오를지도 모른다. 기분이야 좋겠지만, 죽은 뒤에 내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이 되건 위인전에 오르건 다큐멘터리를 찍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니 사는 동안에 평범하게 행복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보통사람들 속에 보통사람으로 사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리지도 않을 것이다. 혹은 자녀들을 특별하게 키우고 싶다는 욕망을 비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통사람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평범한 것이 얼마나 비범한 것인지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이 시리즈는 지침서도 아니고, 자기 계발을 위한 글도 아니다. 여러분에게 이미 그런 콘텐츠들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테니까, 그리고 보통사람을 추구하는 나는 여러분의 삶의 방식을 이미 충분히 존중한다. 이 글이, 나의 졸고가, 그 삶에 아주 작은 응원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가 어깨를 두들기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것에, 든든함과 힘을 얻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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