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의 비범함 03
찍찍이,
혹은 벨크로(Velcro)를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방, 안전기기, 장갑, 의류 등등 우리 삶의 여러 곳에서 정말 다양하게 쓰이는 물건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조르주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이라는 스위스 사람을 아는가?
중증의 스위스 덕후거나 Velcro사의 임직원 출신이 아니시라면 아마 모를 것이다.
예상하신 분도 있겠지만, 드 메스트랄 씨는 바로 그 “찍찍이”를 개발한 사람이다. 산토끼를 사냥하느라 우거진 숲에 들어가서 옷에 붙어버린 씨앗이 잘 떨어지지 않자, 호기심 많았던 그가 아이디어를 얻어 갈고리와 고리모양을 각 면에 가진 테이프를 만든 것이 찍찍이의 시작이었다. 그야말로 인류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놓은 업적을 일궈냈지만, 딱히 우리가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도 보지 못했고 그의 이름을 들어볼 만한 기회도 여지까지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제품명이 그의 이름이 아니라 회사의 이름을 따다 보니 더욱 이름을 남길 가능성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벨크로사(社)는 어쨌든 현대에도 연간 18억 달러(한화 약 2조 3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5천 명의 임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비록 특허가 만료되어 3M 같은 다른 회사들도 많이 만들면서 제품, 효용, 고용, 매출 등등 여러모로 드 메스트랄씨의 “업적”은 만만한 것이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당연스럽게 쓰고 누리는 것들의 이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아니더라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보통사람들의 삶을 개선시켜 왔으며, 따지고 보면 그들도 에디슨이나 잡스 같은 불세출의 발명가는 아니더라도 참으로 비범하게 평범한–아니면 평범하게 비범한–사람들이리라. 단순히 엔지니어나 특정 이과계열 직업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드 메스트랄 씨”가 되어서 자신만의 찍찍이를 세상에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계발서와 동기부여영상, 강연 등이 우후죽순으로 한없이 자가생산과 자기 복제를 이어가는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메시지는 “Change the World”였다. 세상을 바꾸고 다르게 생각하고, 마치 스티브 잡스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인재상이 실리콘밸리와 미국땅을 넘어 우리나라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왔다. 꿈을 좇아라, 이뤄라, 새벽 5시에 일어나라, 4시에 일어나서 경쟁자들이 잘 때 따돌려라, 정말 쌔가 빠지게 일해라 등등 필자도 한 때 언어에 관계없이 정말 다양한 동기부여 영상에 마약과같이 중독되어 있었다. 마치 평범하게 살면 안 된다는 듯이, 보통의 충실한 하루를 보내면 죄악이라는 듯한 윽박지름에 사실 이제는 겁을 지레 먹게 된다. 드 메스트랄씨도 찍찍이를 만들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했던 것일까…?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대부분의 우리는 위인전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 위인들이 살았던 어떤 시대보다도 ‘성공’한 듯 보이는 사람들과 부자와 연예인들에게 참으로 쉽게 노출되어 있다.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박해지고 뭔가를 하지 않고 있는 듯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인생(Mediocre Life)을 살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Good or Bad을 따지는 것은 지금 살아있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냥 일을 하고, 그냥 매 호흡에 빨려 들어오는 산소에 작동하는 우리의 심장 박동이 지쳐서 멈춰버리는 날까지, 때로는 열정을 쫓아, 때로는 게으름과 싸우며, 때로는 돈이 필요해서라도 우리는 삶을 살고 일을 하면 된다. 자신을 향한 채찍질을 하더라도 엉덩이에 흉터가 남을 정도로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며, 반대로 자신의 업적을 너무나 과장하여 자랑하고 싶어질 때에는 “그래서 내가 드 메스트랄 씨는 넘어섰나?”를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를 겸손히 표현하면 된다.
그것이 여러분의 비범한 평범함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세상을 바꾸는 업적을 남기는 것을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인생에는 열정과 노력도 있지만 우연함과 설렘도 있다. 토끼를 따라 들어간 풀숲에서 산우엉씨가 옷에 붙어버린 것에 드 메스트랄씨는 ‘호기심’을 갖고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평범한 우리들도 말랑한 호기심을 갖고 적정한 수준의 열정과 노력으로 건강히 살아가다 보면, 우리만의 찍찍이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