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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테드 Feb 18. 2022

코리빙 파스타학 개론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05


이게 참 아이러니하다. 


파스타 면은 왜 1인분씩 나눠져있지 않을까? 쌀도 쌀 컵이 있는데, 파스타는 왜 그런 게 없을까.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봐도 동전 얘기밖에 없다. 100원짜리 만큼 집으면 된다고 해서 끓여보면 좀 모자라고, 저번에 좀 모자랐지? 하고 양껏 잡으면 이건 1인분이 아니다. 


이건 대체 몇 인분인 걸까


그래도 이 문제는 같이 먹어줄 사람이 생기면 해결이 된다. 1인분은 어려워도 생각보다 2-3인분은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나도 모르겠다. 그냥 일반적으로 그만큼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코리빙 하우스에는 같이 먹어줄 사람이 많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불러내서 약속을 잡기보다는 그냥 눈앞에 있는 사람이 선의의 희생양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테드의 요리에는 많은 희생자가 탄생했다.


어, 이제 와? 밥은 먹었어?

파스타 파스타

그나마 오일 파스타를 하는 날에는 나름 괜찮은 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면 오일 파스타는 양 조절하기가 수월한 편이기 때문이다. 면이 아무리 많아져도 올리브유를 적당히 가감하고 간만 맞춰주면 대충 어떻게 커버가 된다. 2명의 희생자건 3명의 희생자건 금방 뚝딱 양을 조절할 수 있다. 


문제는 토마토 거나 크림소스를 기본으로 할 때다. 로제도 노답이다. 파스타의 양이 소스보다 많아진 경우엔 이거 뭐 견우와 직녀처럼 1년에 한 번 스쳐 지나간 사이가 될 운명이라고 생각된다. 먹어보지 않아도 이미 곡소리가 들리는 비주얼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스를 막 더 과하게 추가해도 안 된다. 아틀란티스가 물에 잠겼듯이 파스타 면이 폭삭 잠겨버린다. 졸여볼까 하고 좀만 끌이다 보면, 면은 후루룩 찹찹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툭툭 끊겨버리게 된다. 파스타가 이렇게 어려운 요리였나 싶다.


오일 베이스 파스타 짱...


신기하게 시판용 소스는 항상 3-4인분 용이다. 이 말을 쉽게 해석하면 ‘어떻게 요리를 해도 이 소스를 갖고 너는 정량에 맞추기 어려울 걸?’이다.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기에는 테드는 자취 생활 10년이 너무 아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몇 가지를 조금 상비해두고 산다. 맛을 해치지 않고, 양만 늘려 줄 도우미들이다. 같이 사는 희생자들의 지속적인 먹방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재료들이다. 토마토소스 일 때는 케첩, 크림일 때는 멸균 팩 우유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코리빙 파스타학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수없이 실패하고 정리한 거니 꼭 기억하길 바래본다. 스파게티면은 500g짜리 반 봉지를 털어 넣으면 3명이 배 터지게, 4명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 다 부으면 7인분이다. 그리고 시판용 소스 한 통과 케첩 또는 멸균 우유만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든 먹음직스러운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 오일 파스타일 때는 올리브유 맛있는 거면 충분하다. 



희생된 친구들


어 근데 이거 벌써 한 4인분인 거 같은데...?
아, 오늘도 결국 1인분은 물 건너갔구나

코리빙 하우스에 살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 늘어버렸다.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오면 우연히 마주하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 곳, 코리빙하우스. 연희와 테드는 같은 코리빙하우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으로 코리빙하우스에서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여러 가지 모양새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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