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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테드 Mar 06. 2022

새벽 4시에 찾아온 당돌한 불청객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09




코리빙 하우스에 살다 보면 참 별 애별 일들을 많이 겪게 되지만, 그래도 웬만한 일은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냥 별일 없이 살려고 노력한다. 따로 또 같이 살려 다 보면 그게 서로의 정신 상태에 가장 좋다. 하지만 그래도 어쨌건 사건은 일어난다. 



우연히 일어났다거나,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의도와 상관없이, 생각지도 못하게, 어떻게 그런 일이? 



이 일도 그런 일 중에 하나였다. 임팩트가 커서 사뭇 기억에 남을 뿐. 


때는 바야흐로 한 코리빙 하우스가 오픈한 지 약 1~2달 밖에 안 되었을 때 일어난 일이다. 테드는 그곳이 오픈하기만을 기다리다 이사를 왔다. 그렇기에 사람도 많이 없었고, 인사를 할 일도 많이 없었다. 사람이라도 모여야 뭘 하든 말든 할 텐데, 그러다 보니 서로 어색하게 이름을 알거나 끽해야 밥 한 두 번 정도 먹어본 사이가 다일뿐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서, 혼자 거실 티비를 독점하고 영화를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직 친한 사람이 없었던 테드는 직장에서 퇴근해서 혼자 요리를 대충 해 먹고, 방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정말 축복받은 꿀잠러였던 테드는 중간에 깨는 법이 없다. 아마 누가 업어가도 모를 거라는 말은 여기 쓸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새벽 3시 45분에 깨어났다. 방문 쪽에서 나는 소음 때문이었다. 


테드가 살던 코리빙 하우스 각 방의 문은 지문 또는 4자리의 숫자를 입력하면 열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는데, 이게 몇 번 자주 틀리면 큰 소리의 경고음이 울린다. 이 경고음이 울려서 깨어났던 것이다. 사실 한 번 울려서 깨어나지는 않았을 것 같고 여러 번 울렸을 것이다. 누군가 새벽에 방에 들어오려고 했다.


사실 처음 한 1~2분 동안은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코리빙 하우스의 구조상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누군가 술에 취해서 방을 잘못 찾아왔겠지 생각했다. 이사 오기 전에 나와 같은 방 번호를 공유했던 사람인가? 또 누군가가 흑역사를 생성하는 중이구나 싶었다. 사실 좀 허탈하고 웃겼달까. 


요거 내 방문인데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경고음이 울리고, 손잡이는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고 문도 쿵쿵거리다 보니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문을 열지 못하자,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아이씨 왜 안 열려. 에이씨…


하지만 테드도 테드 나름대로 답답한 지경이었다. 방의 문이다 보니, 눈구멍이 있을 리 만무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함부로 문을 열까. 요즘 세상이 흉흉한데. 이 팽팽한 대치 상태는 거의 10분 동안 지속되었다. 계속 그렇게 얄팍한 방문 하나를 두고 그 불청객의 소리를 듣다 보니,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라고 테드는 생각했다. 아, 공용 거실에 앉아서 티비를 자주 보던 그 친구구나. 누군지 알았으니 방문을 열고 취한 친구를 집에 데려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거기 본인 방 아니고 지금 새벽 4시예요!

테드의 이런 결심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게끔, 앞방에 사는 친구가 먼저 용기를 내서 문을 박차고 나와 소리를 질렀다. 이 친구도 참다 참다 나왔겠지. 뒷북이라도 쳐야겠다고 생각한 테드는 따라 방문을 열었고, 불청객은 당황하여 본인 방으로 열심히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이 친구랑 술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다음 날 그 불청객 친구는 연신 사과를 했다. 아직 입주한 지 얼마 안돼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헷갈렸다고 한다. 카톡 선물하기에는 스벅 프라푸치노 쿠폰이 도착해있었고 서로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의도와 상관없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하는 그냥 그런 일 중 하나였다고 치기로 했다. 이 얘기를 두고두고 놀리기 위해 테드는 이 친구와 친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얘기를 글로 써도 되겠냐고 물어봤고, 그러라고 허락해주었다. 


지금 테드가 사는 코리빙 하우스는 호텔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코리빙 하우스다 보니 방문에 눈구멍이 있다. 눈구멍을 볼 때마다 종종 그 친구가 떠오른다. 그래도 이런 우연이 만들어준 재미가 또 이곳에 사는 재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 솔직히 매번 생각하지만 좀 신기한 버튼 배열이긴 해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오면 우연히 마주하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 곳, 코리빙하우스. 연희와 테드는 같은 코리빙하우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으로 코리빙하우스에서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여러 가지 모양새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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