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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테드 Feb 07. 2020

오, 연남/유니드마이요거트_04

[테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요거트 뿐이었을까?

오, 연남!

어쩌다 연남에서 살게 된 다섯의,

로컬 맛집 리뷰 프로젝트


두 번째 공간 / 유니드마이요거트


사실 처음엔 이름이 맘에 안 들었어. 왠지 강요당하는 기분이라.
근데 왜 그렇게까지 강요할 수밖에 없었나를 알 것 같기도 해.



나는 달달한 것들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근데, 뭔가 요거트 가게를 먼저 선뜻 들어가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처음 오연남 친구들이 강추! 한다면서 가자고 했을 때도 약간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같은 기분이었달까.

갈 날이 돼서도 뭔가 도착하기 전까지도 뭔가 싫어할 이유가 천지에 널려있었다.


그날이 꽤 추운 편이었는데, 뭔가 연남동 저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보고 흥미가 떨어졌었다.

게다가 가게 이름도 "너는 내 요거트를 원해!"라는 말이 뭔가 살짝 강요당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고, 반지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반지하에 가게가 있는 것을 보고 아 뭔가 난 이 가게를 좋아하게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이 생긴 채로 들어간 것 같다.


가게는 되게 신기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계단은 양쪽에 나아 있어서 두 방향으로 들어오고 나갈 수 있게 되어있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와서 세네 발자국만 정도만 걸으면 바로 카운터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한 친구 자리 근처에 짐을 먼저 풀어놓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메뉴를 구경하러 갔었다.



메뉴는 뭔가 다양하고 어려웠다. 내가 요거트를 많이 안 먹어봐서 그런지, 아니 사실 굉장히 공급자적인 관점에서 디자인된 메뉴라고 생각했다. 토핑을 고를 수 있는 메뉴는 오가닉 그릭 요거트와 프로즌 요거트뿐이 없었는데, 토핑을 오른쪽에 다른 메뉴로 둔 것도, 순서를 섞어둔 것도 그렇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메뉴를 보면서 헷갈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나는 프로즌 요거트를 주문했다. 토핑은 4번을 주문했다. 호두 + 아몬드 + 건 크렌베리 + 건자두 + 꿀 + 뮤즐리는 뭔가 알 것 같은 맛이기도 했고 실패하기 어려운 맛이라고 생각했다.


주문을 하고 책상에 앉아서 잠깐 생각했던 건 책상이 원목이라 참 반들반들하다는 것이었다. 뭔가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그러고 요거트가 나왔을 때 뭔가 "아.. 내가 약간 떼를 부리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어릴 적에 막 엄마가 뭐 먹어보라고 주면 그냥 괜히 싫어서 싫다고 떼 부리는 것 같이, 나도 괜히 요거트가 싫어서 지금까지 떼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 숟가락 작게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차갑고,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프로즌 요거트가 입안에서 순식간에 사르르 녹았다. 이런 다양하고 이질적인 맛을 주는 것은 요거트밖에 없을 거다. 신맛과 단맛이 같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분명하게 끊어져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신맛으로 강렬하게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잠깐 쉬었다가 달달한 속마음을 얘기해주는 것이 마치 츤데레 같았다.



차가운 요거트에 번쩍 정신을 데이고 나니까 주변 것들도 눈에 들어오더라. 파란색 장미 문양이 이쁜 접시도 눈에 들어오고, 접시와 유리그릇 사이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깔아 둔 냅킨도 눈에 들어왔다. 스푼은 도자기로 되어있었는데, 번쩍번쩍한 하얀색의 재질감이 요거트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옆에 다른 친구들이 먹고 있는 요거트 보울도 눈에 들어오고, 이쁜 꽃무늬 패턴의 식탁보도 보였다. 주변을 돌려보니 파란색인 접시까지도 웜톤으로 보일 정도로 따듯한 공간이었다.



바로 등 뒤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다. 나무 박스 위에 정돈되어있지만 정돈되지 않은 채로 녹아내리는 것이 공기에 따스함을 더한 듯했다.



액자도 모두 하나같이 따듯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크기, 또 다른 방향에 다른 주제들로 채워진 액자들은 하얀 계단의 하얀 여백을 채우면서 마치 내 요거트위에 올라와있는 다양한 토핑같이 공간이 붕 뜨는 것을 막아주는 듯했다.


그렇게 먹다 보니 어느새 한 접시를 비웠더라. 내가 대체 왜 떼를 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정하긴 뭔가 억울하게 싫긴 했지만, 나는 진짜 이 가게의 요거트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아니 요거트라는 매개체를 통해 주변의 작은 디테일들에도 감사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했던 것 같다.


차갑고 새콤하고 달달한 프로즌 요거트 한 그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것 같아서,

나는 이번 가게가 참 좋았다.


혼자서도, 친구와도 반 강제로 이 집의 요거트를 먹으며 우리 주변에 당장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그런 시간을 갖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오 연남 다음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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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남/유니드마이요거트_04 [테드]


(업로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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