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핸드드립 하기

#외로움 (오후 7시의)

by 너무 다른 역할

"어쨌든 다무라 군은, 다무라 군의 가설은 꽤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과녁을 향해서 돌을 던지고 있어.

그것은 알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타포를 통하면 그 거리는 훨씬 짧아집니다."


-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끼




외로움, 어렵다.

일상에 pause가 많아질수록 더 그렇다.

약속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7시 즈음,


외로움은 활자의 형태로 눈 앞에 떠 있다.

이런 날, 외로움은 실체로 다가와 전반적으로 머문다. 잠들기 전까지 내내.

이걸 늘 급하게 해결하려 했다.


연락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뒤져서 같이 술을 마셔줄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내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소소한 안주를 차려놓고 혼자 술잔을 비우고

별로 챙겨 볼 생각이 들지 않는 미드와 중드를 다운받고,

TV 채널을 1번부터 100번까지 십수 번을 돌려서 겨우 익숙한 프로그램 하나 찾아내 생각 없이 응시하고,

다 차지도 않은 쓰레기통을 모두 비우고,

하도 오래 미뤄둬서 미뤄뒀다는 인식조차 희미한 일들 (양념통과 용품이 가득한, 부엌 식기 건조대 옆 공간을 정리한다든가, 집구석구석 산재한 CD를 장르별로 나눈다든가, 베란다에 있던 흰색 탁자를 거실로 가져와 술병을 정렬한다든가, 4년 전부터 쓰지 않던 아이폰4를 100%로 충전하거나 하는)을 굳이 몸을 재게 놀려 해버린다.

그러니까, 단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외로움을 해결한다는 말을 무심코 하고 나니, 이것도 웃기다. 외로움이 문제적인 상황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니까. 외로움은 나라는 존재를 감정적 물리적으로 휘젓는 상황이긴 해도, 문제라고 명명하기엔 억울하지 않을까. 여튼)


하지만, 급하고 임시적인 해결책으로는 이른 저녁에 떠오른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다.

떼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는 방법 같은 게 효과를 발휘할 나이는 아닌 것이다. 결국,




외로움이라는 건 핸드드립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집에 오자마자 잠옷을 꿰차 입은 후에

커다란 도자기 컵과 드리퍼를 준비하고

외로움을 마지막 가루까지 톡톡 털어내서 담고

물이 끓을 동안 옆에서 조용히 지켜 서 있다가

천천히 돌려 부으며 외로움을 내리는 것.

이 모든 걸, 차분하지만 느리지 않은 동작으로.


따듯한 액체 형태의 외로움은 만만해서 손에 쥘 수 있다.

양손으로 큰 컵을 감싸고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다.

작은 포말과 느린 소용돌이가 컵에 비정형적으로 일어난다.

외로움은 한껏 풀어져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기화한다.

눈 앞에 떠 있던 외로움이란 활자가 획들을 하나씩 감추며 사라질 수 있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컵에 얼굴을 박기를 권한다.

따듯한 김이 눈 주위를 감싸도록. 그렇게,


외로움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도록.

조금 뻔할지라도, 이런 메타포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끈질긴 외로움과 우리 자신의 거리를 조금 좁힐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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