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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Sep 29. 2022

작은 지평의 시절

#27년 만의 중학교

그러니까 자네도 어느 집 말 뼈다귀인지도 모를 미아가 된 고양이를 찾기보다는, 

차라리 진지하게 자기 그림자의 나머지 절반을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


-소설 「해변의 카프카」中, 무라카미 하루키





안녕했다. 

27년 만에 찾은 나의 중학교는. 


추석 연휴, 대전 시내에서 몇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우연히 지도 앱을 보고 내가 다녔던 중학교가 걸어서 25분 거리임을 알았다. 가야 할 곳을 찾았다는 듯 걸음은 가벼웠다. 가는 길은 낯설었다. 그 시절 집에서 학교를 오가던 길의 맞은편 동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좁은 골목을 지나 교문이 보이자 풍경은 급격히 친근해졌다. 


연휴 주차를 위해 열어둔 교문 안으로 들어가 운동장의 끄트머리에 선 채 한참을 감상했다. 

세월을 온전히 건너뛸 수 있는 건 없겠지만, 풍경을 징검다리 삼아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 시절대로의 얼굴들과 그 시절대로의 소음이 고스란한 채. 



인조잔디로 잘 정비된 운동장에 27년 전의 흙바닥 운동장이 중첩됐다. 


점심시간이면 모든 학년의 모든 반에서 나온 아이들이 운동장에 가득했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축구공과 농구공들이 엉키지 않고 날아다녔는지 새삼 신기하다. 


교문 쪽 운동장에 있던 정식 농구대 말고, 구령대의 오른쪽 축대에 예비로 만들었던 3개의 농구대는 자취가 없었다. 농구대 절반쯤 높이의 축대에서 거꾸로 뛰어서 볼품없는 자세로 덩크슛을 하고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하면 착지할 때 무릎이 나갈 테지만 14살 때는 무릎의 안위보다는 덩크슛이 더 중요했다. 



작은 지평으로도 만족하던 시절이었다. 

물리적으로는 집과 학교가 있던 동네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정신적으로는 가족과 친구들과 공유하던 세계가 전부였다. 


지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그 나이 때로 돌아간다면 

난 그 지평 안에서만 머무를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꽤 높은 확률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그렇게 안온할 수 있는 기회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적어졌으니까.  



운동장의 가장자리를 돌아 학교 건물 쪽으로 갔다. 

수돗가가 그때 그 자리에 여전했다. 수업시간에 금병매와 드래곤볼을 몰래 돌려보던 아이들은 체육시간이 끝나고 들어가던 때에 빠짐없이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고 세수를 했다. 로션 따위는 한 명도 바르지 않던 시절. 여하튼 수돗가 뒤쪽에 남학생들이 드나들던 현관이 있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남녀 합반은커녕 남자와 여자의 공간이 분리된 학교였다. 

160도 정도로 꺾인 학교 건물은 중앙의 교무실을 중심으로 왼쪽은 여학생 교실, 오른쪽은 남학생 교실이었다. 출입문도 분리돼 있었다. 선생님들은 꽤 엄격하게 남녀 공간의 분리를 유지했다. 별다른 분란을 일으키는 소질이 없던 나는 여학생의 공간 쪽에 간 기억이 거의 없다. 


성격 싹싹한 우등생이었다면 선생님들의 심부름 같은 걸로 여자 교실로 갈 수 있었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더 평범한 이미지의 학생 A였을 뿐이어서 그런 기회가 없었다. 성적인 호기심이 딱히 강한 나이도 아니어서 그때도 지금도 남녀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지 못한 게 크게 아쉽거나 하진 않다. 오히려, 27년 전에 작은 미지(未知)를 남겨두고 온 편이 더 낫다. 



중학교 3학년 때, 누군가가 삼촌의 사주풀이 책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도표에서 골라 풀이가 나온 페이지를 찾는 쉬운 방식의 책이었다. 

계단 아래의 등나무 벤치에서 친구가 찾아준 나의 사주에 역마살이 있었다.  

벤치의 끝에 앉아 운동장을 응시하던 담임선생님이 다가와 자기 사주도 봐달라고 했고, 아이들은 우르르 둘러싸고 같이 풀이를 들었다. 그때 그런 게 어른들에게 무슨 인정이라도 받는 듯해서 사주풀이 책을 가져온 친구나 그 옆의 우리들 모두 괜히 의기양양해했었다. 



의심이 없던 나이였다. 

주는 대로 흡수하는 것에 만족하고, 웬만한 규율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던 그런. 

그건, 앞으로 나의 세상이 꾸준하게 커질 거라는 믿음 덕분에 가능했지 싶다. 


커지다 만 세상의 조잡한 비의(秘意) 때문에 상심하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의심 때문에 스스로 왜소해지는 어른이 된 지금, 

그 시절을 거쳐왔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 풍경을 아껴두고 보고 싶다는 생각과, 

틈나는 대로 이 시절의 기억을 꺼내서 지금 내가 가진 결여를 메우고 싶단 생각이 동시에 든다. 


어느 쪽을 택해도 괜찮을 것이다. 

몇 겹의 고민을 가리더라도, 27년간 이 풍경이 간직해 온 그때의 나는 건재할 테니까. 



교문을 천천히 돌아 나온다. 

어린 몸에 길기만 했던 등굣길이 앙증맞게 느껴진다. 

잠시 시간을 확인한다. 아직 돌아갈 시간은 충분하다. 


때마침 시간도 그때의 하교시간과 비슷한 오후 4시 40분이다. 

익숙한 걸음으로 예전의 집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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