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 산책
세절역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이른 저녁 약속이었는데 더 이르게 도착했다.
처음 온 동네였기에, 25분의 여유가 반가웠다.
대로에서 벗어나 천을 건넌다. 이게 불광천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24년을 서울에서 살았는데 여전히 난 서울 사람이 아닌 듯하다.
나를 모르는 도시에 몰래 들어와 사는 그런 기분은 나쁘지 않다. 여전히.
하늘을 즐기다가 문득,
이런 날씨가 종종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래, 하늘과 구름에 감탄하지 않았었다.
느낌이 성장한다는 생각이 든 지 오래다.
언젠가 느껴본 감정에 대해서 감탄의 정도는 약해진다.
미지를 그리워하는 습관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오래전 어느 날에는 이런 하늘을 보면 어딘가를 떠올렸었다.
어느 때부터 찰나를 흘려보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날씨를 만끽하는 건 잠깐이면 되는데,
자질구레한 이유를 굳이 만들어 스스로 조급해진 건 아닐까.
술집이 양쪽에 즐비한 골목을 걷는다.
장사 준비를 하는 집들의 문은 대개 열려있다.
덕분에 골목은 더 넓어 보인다.
난간에 팔을 얹고 한참, 산책길을 걷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이런 날씨 아래에서 풍경은 본래의 각도를 찾아가는 듯하다.
폭염과 장마가 요란했던 여름이 지나간 시점이라 더더욱 분주하게.
요란하지 않은 소리가 사방에 흐른다.
사람들과 차는 천천히 지나가고 물과 구름은 더 천천히 흐른다.
나는 잠깐 만끽하고, 풍경은 그 잠깐을 즐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