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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Nov 18. 2022

반나절의 강화도

강화로 가는 도로는 어수선하다.

도로 위에는 인천항 쪽을 오가는 화물트럭이 즐비하고, 도로의 양 옆으로는 개발 중인 신도시의 무질서함이 이어진다. 모든 게 누군가에겐 일상이겠지만, 굳이 연차를 소진한 평일의 오전에 즐길 풍경은 아니다.


그래서, 1시간 남짓 강화로 가는 동안 몇 번이나 집으로 돌아갈까 했다.

어차피 그곳엔 만나야 할 사람도, 지켜야 할 약속도, 벼르던 풍경도 없었으므로,

유턴 한 번이면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연차를 소진한 평일의 오전에는 그런 결심조차 귀찮았다.



섬에 들어선 후 어느 동네에 충동적으로 차를 세운다. 높게 뻗은 측백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와서였다.

내리고 보니 도로 건너에는 천연기념물 나무도 하나 있었다.

모두 둘러보고 나서 정작 한참을 감상한 건 배추밭이었다. 적당히 차가운 공기와 배추의 초록이 어울렸다. 휘어진 도로를 따라 심은 배추밭의 굴곡이 단정했다.

그 부드러운 휘어짐을 따라 차들이 조용히 지나다녔다.



네비에 찍은 동막해변에 도착해 차를 세운다. 주차요금 징수원이 다가와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2천 원을 건네니 차의 앞유리에 영수증을 끼운다. 주름이 굵은 그의 손은 여름의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내어 단단하게 그을려있다. 그게 이 바닷가의 첫 풍경이었다.



모래사장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걷는다. 뻘에 햇빛이 반사된다. 멀리서 보는 뻘에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뻘과 모래사장의 경계는 물이 들고 난 축축한 자국이다.

바다는, 한쪽에는 끝내 들이닥치지 못했고, 한쪽에서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했다.

모든 경계는 그렇게 '끝내'와 '미처' 사이에 생길지 모른다.



후포항을 찍고 다시 차를 몬다.

넓은 주차장에는 방파제 낚시를 하러 온 남자가 세워둔 차 한 대 있을 뿐이다.

깨끗하게 정비된 횟집 앞에 주인들이 몇 명 나와 얘기를 하고 있지만 호객은 하지 않는다.

덕분에, 천천히 항구를 돌아본다.



뻘의 먼 쪽에 있던 갈매기 무리에서 한 마리가 빠져나와 날고 있다.

그의 날개가 그리는 궤적은 횡으로도 종으로도 규정할 수 없기에,

그의 눈빛이 향하는 목표를 나는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게 갈매기는 내 시야의 끝에서 들어와 끝으로 빠져나간다. 무심하고 유심하게.



정박 중인 배의 어구는 각자의 자리에 정리돼 있다.

젓갈용 새우를 담는 파란색 통도 후미에 단정하다.


바람이 불지 않는 항구에서 배는 흔들리지 않는다.  

때가 되면 다시 연안으로 나가 무언가를 건져 올릴 것이다.

그물 안에 든 것을 선창에 쏟아낼수록 배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배가 항구에서 떠나 바다의 어느 지점까지 가는 흔들림은, 흔들리지 않는 상태 사이의 잠깐일 것이다. 그걸 견디는 사람만이 배를 계속 탈 수 있을 것이다.



배와 뻘이 섞인 풍경은 녹이 슨 부품처럼 단단하다.

덕분에 그 풍경을 감상하는 시야에 등락없다.



여전히 조용히 얘기를 나누는 횟집 주인들의 옆을 지나 차로 돌아간다.

그 사이 몇 대의 차가 들어와 몇 군데의 탁자를 채웠다.

바닷물이 어느 정도 물러갔거나 들어왔는지는 알 턱이 없다. 다행이다.



해안도로를 무턱대고 따라가다가 내리 삼거리 주차장에서 잠깐 쉰다.


검색하기로는 주말이나 휴일에 캠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평일의 이곳 몇 대의 차가 서있을 뿐이다. 트럭을 개조해 여행을 하는 듯한 부부의 대화가 잠깐 귀에 박히다 사라진다. 탁 트인 풍경을 마주 보면서, 담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는다.

물론 집에 가서 사진을 확인하면 담아오지 못한 것들만 떠올릴 테지만.



강화에서 다시 집으로 가는 도로는 여전히 어수선하지만,

몇 시간 전에 한번 지나왔다는 이유로 낯설지 않다.


강화와 인천을 잇는 다리로 들어가는 교차로,

이번에는 다시 강화로 유턴할까 하는 충동이 든다.

하지만, 연차를 소진한 평일의 오후에 그런 결심은 여전히 귀찮았기에 얌전히 신호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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