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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28. 2024

문을 나서면 만나는 묘한 독립성에 대하여

#중국 윈난성 쿤밍

타인이 무언가를 권유하면 대부분은 듣고 흘려버리고, 

타인에게 무언가를 진지하게 권유하는 일도 없다. 


-에세이 '자유업의 문제점에 대하여' 中,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여행이란, 참 이상한 행위다.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 곳으로, 누구든 반기러 떠나기 때문에. 

낯선 곳의 누구도 우리의 도착을 알아채지 못하지만, 우리는 낯선 곳의 모든 걸 눈에 담으며 즐거워한다. 


그것은 여행지에서의 시간에 평소보다 무책임해도 된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단순하게 새로운 곳의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된 거 같은 섣부른 착각 때문이기도 하다. 


여하튼. 


윈난성(운남성)의 성도인 쿤밍(곤명)까지는 인천에서 비행기로 딱 4시간 걸린다. 

새벽 6시 50분 비행기를 타려고 전날 밤부터 거의 자지 못했고, 굳이 여행의 시작부터 택시를 타지 않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또 1km 정도를 캐리어를 끌며 걸어왔지만,
새로운 곳이 주는 들뜸에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거리로 나온다. 



어느 도시건 거리에는 그 도시만의 질서가 있다. 

거기엔, 사람과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도 포함되고, 

그 사이를 채운 소리의 냄새와 공기의 밀도도 포함된다. 


그 질서는 누군가가 문을 나설 때부터 그 거리에 녹아드는 하나의 방법이기에, 

이상징후 없이 하루를 보내기 위해선 사소한 것들을 잘 관찰해야 한다. 


쿤밍에서의 질서는 명료한 소리로 대화하는 사람들로 시작한다. 

 


숙소 앞 식당을 지날 때마다 만둣집의 사장은 우리를 부른다. 

늘 지도에 어딘가를 찍고 걸어가는 우리와 그녀의 대화는 이어지지 못한다. 


이곳의 질서체계에서, 그건 서로에게 아쉬운 일은 아니다. 

그녀에게 우리는 특정한 누구가 아니라, 앞을 지나가는 누구든, 이고, 

우리에게 만둣집은 좌표를 저장하지 않은 수많은 장소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도시에서 이러한 '서로 아쉽지 않은' 거래는 계속된다. 

택시를 타도 커피를 사도 우리는 특별한 여행객이 아니다. 

이 거리를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이다. 

물건을 팔건 서비스를 팔건 파는 사람도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이었고. 


호객도 무시도 없기에,  거래는, 미련을 남기거나 불쾌감을 남기지 않는다. 

거래는 명료하게 거래의 결과만을 남긴다. 


여행객으로서 이보다 편할 수는 없는 곳이다. 

필요할 때 필요한 걸 거래하고, 나머지는 거리의 풍경에 집중한다. 

 


손을 돌려서 전원을 충당하는 자가발전 라디오처럼,

정확히 걷는 만큼 풍경이 들어찬다. 

덤덤한 걸음이 닿는 곳마다 시선 둘 곳이 가득이다. 

분명 내가 사는 곳에도 있을 법한 것들인데 한데 모이면 이국(異國)이다. 


분석 대신 감탄을. 

여행을 온 입장에서는 이런 허세에 기대는 게 이롭다. 

100% 꼭 봐야 하거나 먹어야 할 것 따위는 없다. 

30% 정도면 된다. 



사람이 많은 거리로 들어선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동선을 피해 새로운 동선을 만들며 움직인다. 

어느 하나 같은 선이 없지만, 어느 하나 거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겹치지 않는 독립된 여정들 속에서, 

뜻을 알지 못하는 언어들은 내 귀에 닿지 못하고 공기에 흩어진다. 

덕분에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치지 않고 구경한다. 


얼굴이, 옷차림이, 걷는 속도가, 덧칠하듯 풍경에 풍경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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