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무 다른 역할 Aug 29. 2024

절대 망하지 않는 시장구경

#중국 윈난성 - 쿤밍 대관전신농무시장

선한 사람들은 보폭을 맞추어 걷는다.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中, 프란츠 카프카





시장의 이름은 '대관전신농무시장'이다.  

(大观篆新农贸市场 / Daguan Zhuanxin Farmers' Market) 

https://maps.app.goo.gl/dehNBDYLGLmPtqVn6


여행객이 굳이 찾아가는 곳은 아니다. 서울로 치면 가락시장이나 청량리시장 정도랄까. 하지만 여행 전 우연히 어떤 유튜버가 이곳을 찾아가 쌀음료와 매운 순두부쌀국수를 먹고 구경한 클립을 보고 저장해 두었었다. 어느 도시건 시장 구경은 절대 망하지 않는 선택이기에, 여행 2일째, 고민 없이 이곳으로 향한다. 



북문으로 들어서자마자 과일, 채소 섹션이 보인다. 과일들은 모두 크고 잘 손질돼 있다. 어느 좌판 하나 더럽거나 물건이 비어있지 않다. 사진을 찍어도 제지하지 않고 태연하게 물건구입을 권한다. 



군중의 웅성거림 같은 시장의 소음이, 선명한 색들이 가득 찬 거대한 차양막 아래에 떠다니고, 

사람들은 그것을 배경음악 삼아 천천히 발을 옮긴다. 

 


시장은 곧은 직선이 가로세로 격자로 이어진 형태다. 


앞서 지난 과일, 채소 섹션 외에 해산물 정도를 제외하고는 딱히 파는 품목이 모여있지 않다. 생닭집 옆에 만둣집, 족발집 옆에 찻집이 있는 그런 형태다. 여행객보다는 현지인이 많아서 대개 몇 개씩의 봉지를 들고 다닌다. 오전임에도 사람들은 격자의 골목마다 가득하다. 



윈난성의 특산물인 야생버섯이 곳곳에 보인다. 


한글로도 잘 모르는 버섯이름을 한자로 알 턱이 없다. 조만간 찾아갈 야생버섯 훠궈집에서 맛볼 수 있기에 여기서는 생김새와 색감을 눈으로 즐긴다. 상인은 뜨내기 여행객임을 알아챘는지 굳이 설명을 붙이거나 호객을 꾀하지 않는다. 



쿤밍은 물산이 풍부한 곳이라 들었다. 바로 아래에는 동남아시아가 있고, 쿤밍 자체의 날씨도 사시사철 봄날씨어서. 아니나 다를까 시장의 과일과 채소들은 유난히 크고 흠잡을 데 없이 싱싱하다. 

 


시장답게 준비한 양이 어마어마한 먹거리 점포들을 지난다. 


이후 이어진 윈난 여행 내내 이곳 사람들은 먹는 데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그들은 풍부하게 생산하고 부지런하게 거래하고 끊임없이 음식을 만든다. 


이 시장은 그 사이클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의심이나 주저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유튜브에서 본 매운 순두부쌀국수 가게를 한참을 찾는다. 


같은 골목을 세 번쯤 돌고 나서야 지도에 표시된 곳에 그 가게가 없다는 걸 인정한다. 사람이 많았던 걸 보면 망하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옆 골목을 기웃거리다 2층에 붙은 커다란 플래카드가 그 가게의 상호임을 알아차린다. 1년 전 영상에서 1층의 조그만 가게였던 그 식당은 한 건물의 2층 전체를 쓸 만큼 확장돼 있었다. 계단으로 이어진 줄 끝에 가서 선다. 


계단 위에서 본 시장의 풍경은 또 새롭다. 다리 쉼도 좋고 시선 쉼도 좋다. 



辣辣小吃豆花米线

https://maps.app.goo.gl/FYvoBEa34BpHGh9g7


유리로 완전히 차단된 주방에서 위생복을 입은 점원들이 국수를 만든다. 중간에 뚫어놓은 창구로 주문을 하자 놀라운 속도로 국수를 내어준다. 국수의 양념을 넣는 점원의 앞섶에 다양한 색의 양념이 묻어 있다. 그녀도, 아무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작은 하얀 그릇에 담긴 국수에만 모두의 신경이 모인다. 



정돈된 것들이 늘 점포의 앞에 있다. 



숙소에 주방이 있지 않은 한, 여행 중에 시장을 가서 과일 한 봉지 정도 외에 솔직히 살 수 있는 게 없다. 

그럼에도 시장에 가는 건 편한 옷을 입고 심상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내가 알지 못했던 이름의 무언가를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그건, 내가 잠시 떨어져 있는 나의 일상과는 다른 색깔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자, 

그 안에서 보이는 보폭들이 나의 일상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파서다.  


그런 반나절의 여유가, 여행에서는 꽤 즐겁다. 



*참고로, 

농무시장(农贸市场)은, 명사 ‘农副产品贸易市场’의 준말로, 사회주의 체제하의 농민들이 자영지(自營地)에서 생산한 잉여 생산물을 직거래하는 교역 시장. 흔히 ‘自由市场’이라고도 한다 (출처 : 네이버사전)



매거진의 이전글 문을 나서면 만나는 묘한 독립성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