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발명가와 영국의 혁신가가 남긴 ‘독점과 공유의 약속’
몇 일 전, 새로운 사람들과 와인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처음 만나는 이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약간의 긴장과 호기심이 섞여 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누군가 내게 “어떤 일을 하세요?” 하고 물었다.
특허팀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그 한마디에 대화의 방향이 바뀌었다.
한 분이 잔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을 꺼냈다.
“옛날에 영국이 가난했을 때, 국왕이 ‘독점권’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덕분에 대륙의 젊은 과학자들이 몰려와 영국이 산업혁명을 일으켰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미소가 지어졌다.
가끔 특허 교육을 할 때, 후배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해주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늘 내가 누군가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이렇게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순간은 참 신선하고 즐거웠다.
그날 밤, 그 대화가 오래 남았다.
현대 특허제도의 뿌리는 1474년 베니스 공화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니스는 유리 제조, 조선, 인쇄 등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 강국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장인들이 기술을 비밀로 감추는 바람에
새로운 기술이 도시 안에서만 맴돌고, 세상 밖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이에 베니스 정부는 하나의 제도를 고안했다.
“누구든 새로운 발명을 하면, 그 내용을 공개하는 대가로
10년 동안 독점권을 부여한다.”
이 간단한 법이 바로 세계 최초의 근대적 특허법이다.
기술을 숨기지 않고 ‘공개(Disclosure)’하는 대신, 국가가 발명자에게 ‘보상(Exclusive right)’을 약속한 것이다. 이 제도 덕분에 베니스는 혁신의 도시로 번성했고, 발명은 더 이상 개인의 비밀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공유된 지식의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대 특허법과는 일부 차이가 있다.
이후 특허제도는 시간이 흘러 영국으로 옮겨간다. 17세기 초, 영국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나라였다.
왕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귀족이나 상인에게 ‘독점권’을 팔아 넘기곤 했다.
이른바 “왕실 특허(royal patent)”였다. 하지만 이러한 무분별한 특권 남발은 상공인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국회가 나섰다.
1623년, ‘전매조례'라는 법률, 즉 독점법(The Statute of Monopolies)이 제정되면서 '최조의 성문화된 특허 관련법'이 등장한 것이다. 특허는 드디어 왕의 특권이 아닌, 발명가의 권리로 자리 잡았다. 이 법은 단순히 제도 하나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 영향력은 훨씬 컸다.
유럽 대륙의 젊은 기술자와 발명가들이 자유롭고 합리적인 특허제도를 찾아 영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가져온 발명과 아이디어가 모여,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의 중심지가 되었다.
어쩌면 ‘가난한 나라’가 ‘기술로 부를 창조하는 나라’로 변화할 수 있었던 중요한 순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와인잔을 사이에 두고 나눈 짧은 대화가, 다시금 특허의 본질을 떠올리게 했다.
발명은 개인의 창의에서 태어나지만, 그 가치를 지켜주는 것은 사회의 약속이다.
1474년 베니스의 법은 “공개를 통해 지식을 확산시키자”는 약속이었고,
1623년 영국의 법은 “진정한 발명가에게 정당한 보상을 주자”는 선언이었다.
그 두 나라의 철학이 이어져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혁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제도의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다.
“특허의 역사는 결국, 인간이 서로에게 한 가장 지적인 약속이 아닐까...?!.”
:)
※ 참고할만한 자료가 있어 아래 링크로 공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