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가상각의 끝, 그러나 권리는 남는다 (회계와 법적 존속기간의 엇박자)
몇 주 전, 씁슬한 회계장부 속 ‘죽은 자산’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산업재산권의 불용과 폐기 문제를 회계적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회계 업무는 내 전공 분야는 아니다. 그러나 특허 업무를 하다 보면 ‘이건 자산으로 잡아야 하나? 비용으로 처리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종종 부딪힌다. 특허는 기술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재무제표에 반영되는 ‘회계적 실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특허, 디자인, 상표권 등 산업재산권을 취득한다.
이들은 물리적 형태는 없지만 개발비용, 위임비용, 관납료 등 금전적 투입이 발생하므로 "무형자산(Intangible Asset)"으로 회계 처리된다.
통상적으로 특허는 출원 단계에서 ‘건설중인 자산’(Construction in progress)으로 분류되며, 등록이 완료되면 ‘산업재산권’ 계정으로 대체된다. 이후에는 내용연수(보통 5~10년)를 기준으로 정액법 감가상각이 이루어진다. 즉, 매년 일정 금액을 비용으로 인식하며, 자산의 장부가치는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특허의 법적 존속기간은 20년임에도, 회계상 감가상각이 끝나면 장부가는 0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즉, 회계장부상 장부가 0원인 특허라도, 실제로는 여전히 권리가 유효한 경우가 많이 있다.
회계상 금액과 특허의 가치는 다른 잣대로 봐야 한다.
회계장부를 들여다보면, 이미 실질적으로 사용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폐기되지 않은 특허 자산이 수천, 수만 건씩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이는 분명히 폐기 처리 대상임에도, 현실적으로는 회계와 IP 관리의 접점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OA(Office Action) 포기나 등록료 미납으로 권리를 상실했음에도 장부상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 또는 이미 만료된 특허를 관리비용 때문에 포기하지 못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폐기 처리 전에는 국가별로 유예기간(예: 등록료 추납 기간)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 기간이 종료되면 자산조정(감가상각 중단 및 장부 제거)을 수행하는 것이 바랍직하다고 생각한다.
특허 자산을 회계상 반영할 때는 단순히 “등록됐다”는 이유만으로 자산으로 잡는 것은 적절치 않다.
특히 해외 특허의 경우, 자산 인식 기준이 더욱 복잡하다.
예를 들어, PCT 국제출원을 통해 여러 국가로 진입하는 경우, 국제단계에서 발생한 비용을 단순히 하나의 자산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진입 국가별 비율로 배분하여 자산화하는 것이 회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종종 PCT 국제 출원 비용에 대해 하나의 국가에 묶어 처리하거나, 비용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또한 "유럽특허(EP)"와 같이, 등록 후 Validation 절차를 거쳐 각국에서 권리를 확보해야 하는 경우, Validation 국가별로 배분하여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유럽등록 전체’를 하나의 자산으로 남겨두는 사례가 많다.
이 경우 유럽 특허 등록되는데에는 많은 비용이 발생하여 자산 금액이 크지만, 실질적으로 Validation된 국가에는 등록료만 자산으로 처리하여 장부에는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특허는 기술의 상징이자 기업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이지만,
회계 장부상에서는 단순히 숫자와 감가상각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는 “이 기술이 아직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만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죽은 자산’을 정리하는 일을 단순히 회계 조정만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다.
기업이 스스로의 기술 포트폴리오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의미의 ‘가치 있는 자산’을 남기는 과정일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