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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Oct 08. 2020

가치투자

스노우볼을 굴려보자

  

  


  자고 일어나니 어제 다이소에서 산 벽 고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고리가 떨어진 곳에서 조금 앞에는 걸어뒀던 액자가 뒤집어진 채 내팽개쳐져 있다. 라이터로 지져서 벽에 붙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처구니없다. 하맹인 눈치 없이 떨어진 고리를 이리저리 발로 차며 내 주변을 산만하게 만든다. 고리를 집어 거실 끝으로 던졌다. 허공에 털을 흩날리며 뛰어가는 하맹이의 뒷모습을 보며 언제쯤 내 집 벽에 못 질을 하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맹이가 고리를 잃어버렸는지 날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동시에 나는 서울에서 집을 장만하는 건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잠시 동안 하맹이와 나는 허망함을 담은 시선으로 마주 보며 대화했다.


  주말부터 우울하긴 싫었다. 기분전환을 위해 tv를 켰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하고 있었다.  존 리 메리츠 자산운용 대표이사가 나오는 편이었다. 그는 짧게 자신의 소개를 하고 주식투자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난 그의 말에 단번에 매료되었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촬영장을 벗어나는 모습에선 영화 '아가씨'가 떠올랐다. '상심한 나를 위해 나타난 나의 구원자 , 나의 스승님, 나의 존 리' 그의 말대로 '주식 가치투자'를 하면 서울에서 내 집을 장만할 수 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흠뻑 젖어버렸다.


  가치투자를 위해선 우선 미래 유망종목 중 하나를 선택해 방향을 잡고, 기업을 선정해 동업자의 마음으로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 며칠간 유튜브로 시사경제 콘텐츠를 탐닉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미래의 세상을 상상했다. 그러다 평소 좋아했던 자동차 분야 그 안에서도 "자율주행"에 관심이 생겼다. 방향을 정하고 나니 투자를 하기 위한 기업을 골라야 했다. 잡플래닛에 올라온 기업평가까지 읽어보는 집요함으로 마침내 투자할 기업까지 선정했다. 뿌듯한 마음에 기분 좋게 고개를 드니 하맹이가 보였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휑한 거실 한가운데 엎드려 날 노려보고 있다. 심심해 보였다. 어제 떨어진 벽 고리라도 보인다면 이리저리 던져줬을 텐데 안타까웠다.


  무튼 이제 가치투자를 할 차례다. 핸드폰 금융 어플을 켜니 자주 사용하지 않는 계좌에 이십만 원 남짓의 쌈짓돈이 있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월급통장 계좌였다. 이십만 원 아니 이 스노우볼을 굴려 커다란 눈덩이를 만들 것이다. 그 돈뭉치로 내 집을 마련해 옆집이나 윗집에서 조용해달라고 소리칠 때까지 내 집 벽에 행복한 못 질을 할 것이며, 벽에 박힌 못에 소중한 액자를 걸며 환하게 웃을 것이다.  드디어 주식 계좌에 송금을 하려는 찰나에 알림이 뜬다.


 '매진되었던 캣 타워가 입고되었습니다.' 




하맹이를 위해 스노우볼은 다음 달부터 굴릴 것이다.




  









*고양이 잡지 MAGAZINE C 연재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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