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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세호 May 09. 2022

삶은 계란

자극주기


  냄비에 계란이 거품을 내며 끓고 있다. 익어가는 동안 싱크대 아래에서 팔 굽혀 펴기 30개를 쉬지 않고 했다. 가슴이 만져보니 제법 딱딱하다. 두 번째 팔 굽혀 펴기를 한다. 15개가 넘어갈 무렵 팔이 후들거려 바닥에 누워버렸다. 널브러진 김에 계란 먹는 방법을 생각했다. 노른자를 버리고 흰자만 먹으려다 유난 떠는 거 같아 함께 먹기로 결정했다. 요즘 아침을 계란으로 때우고 있다. 어제는 반숙 후라이(sunny-sideup), 그제는 라면에 넣어 먹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별로 없으니 아침이 단순해진다. 오늘은 샤워를 하다 계란 먹을 생각에 삶이 지겹다는 생각까지 했다.(계란을 하찮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냄비에서 계란이 요란하게 움직이며 익어간다. 삶은 계란을 보며 문득 친구들은 어떻게 계란을 대하는지 생각해봤다. 


  고등학교 시절 이부수라는 친구가 있었다. 전교에서 가슴 근육이 가장 발달한 친구였다. 비법은 간단했다. 가슴운동만 했다. 쉬는 시간이면 다른 반 친구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와 이부수의 가슴을 만지고 가곤 했다. 이부수는 봉변을 당하면서 겉으론 불쾌해했지만 난 즐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부수와 친하지 않았을 때 나도 저 무리에 껴서 가슴을 만지고 놀라곤 했다. 하지만 우연히 짝이 되고 만지는 게 지겨워져 관두니 언젠가 만져보라고 먼저 제안을 했었다. 얼마 뒤 나도 또래들처럼 육체미 소동을 겪는 시기가 왔었다. 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화 '바람'을 보고 난 이후였던 거 같다. 이부수처럼 가슴 근육을 키우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이부수를 유심히 관찰했다. 갠 시간이 날 때마다 가슴운동을 했다. 쉬는 시간, 점심, 저녁, 야자시간까지 쉴 새 없이 팔 굽혀 펴기와 벤치 프레스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슴운동을 마친 뒤 꼭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삶은 계란을 꺼내 먹었다. 쇠질을 하고 흙이 묻은 손으로 계란을 까면 흰자에 얼룩이 묻어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베어 삼키고 노른자는 바닥에 뱉었다. 부끄럽지만 당시 그 모습을 보고 감동받아 따라 했었다.


  나와 동업하고 있는 덕우라는 친구가 있다. 삶을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혹은 간섭받고 싶지 않아 하는 친구다. 덕우에게 부탁할 때 나는 화법을 신경 쓰고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충분히 시뮬레이션해본다. 예를 들어 "내일 할 게 없으면 oo나 해보는 건 어때?"같은 본인의 삶을 예상하거나 방향을 제시하는 말을 삼가는 게 좋다. 또 부탁할 땐 일에 대해 재차 묻거나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그 일을 까먹었더라도 말이다. 얼마 전에도 "내가 부탁한 OO 했어?"라는 질문을 던지고 "하려고 했는데 하기 싫게 만들어"라는 말을 들었었다. 주체적인 덕우는 8년째 연애 중인 연인이 있다. 그녀는 최근에 주체적인 덕우에게 일요일마다 함께 교회에 가자는 부탁을 했다. 평소 11시에 일어나는 덕우가 새벽같이 일어나 교회를 나가고 술자리에서 소감을 말해준다.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 나는 이태원에서 덕우가 한라산을 마시며 성경에 대해 말할 때 부활절을 맞아 삶은 계란을 색칠하는 상상을 했다. 무튼 덕우의 계란은 색을 입었다.


  그밖에도 계란을 먹지 못하는 영재는 그 주제로 사람들에게 주목받길 좋아하고, 함께 사는 동거인 친구는 집안일을 돕지 않고 날로 생활하고 있다.(날계란을 까먹는 상상) 매우 열 받는다. 계란 한 판의 나이가 지나는 시점에서 다르게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아침에 삶은 계란을 보며 떠올려봤다. 


 삶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든, 고양이와 함께 앞발로 차며 달달 볶든 , 저글링을 해보든 말이다. 






언젠가 예능에서 최양락이 전유성과 나눈 대화를 기억한다.


-양락아 넌 이 계란으로 몇 가지나 할 수 있냐?

-뭘 몇 가지나 해요 한 열 가지 되려나 삶아먹고 부쳐먹고

-넌 머리가 나쁘구나 난 54356가지도 넘게 할 수 있어

-계란을 5층에서 1층으로 던질 수도 있고

-모자에 넣고 다닐 수도 있고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척에게 택배를 보낼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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