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세호 May 16. 2022

보라색 1

어느 날

  왼쪽 손목에서 애플 워치의 진동이 느껴진다. '실외 걷기를 하고 있습니까?' 나는 아니요를 눌렀다. 퇴근길이 러닝머신보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입은 가디건을 한 손에 들고 보도블록을 보며 걷는데 티끌 하나가 눈에 걸렸다. 벚꽃잎이었다. 5월의 끝자락, 올해 마지막 벚꽃잎이겠다 생각이 들었다. 허리를 숙여 떨어진 벚꽃을 주우려는데 오토바이가 지나쳐 벚꽃이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흔들리는 벚꽃을 양손을 모아 받고 손을 오므렸다. 순간 작은 바람이 혹은 입김이 불어 앞머리가 흔들렸다. 잠시 눈을 깜박이고 앞을 보니 골목길이 보였다.


  벚꽃이 한 손에 쥔 채로 들어선 골목은 한적하고 낯설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필로티 구조의 원룸 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정사각형 마당에 나무 하나 딸린 주택들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어 거리에 안정감을 주었다. 낯선 거리에 이방인으로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눈에 띄는 건물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이었고 벽에는 담쟁이넝쿨이 붙어있어 국립학교 기숙사가 떠올랐다. 정면에서 1층과 2층의 창문 6개가 보였다. 창마다 나오는 불빛이 달랐다. 나는 그곳이 카페일 거라 생각해 커피나 마실 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검은색 투피스 정장을 입은 여자가 다가왔다. 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화랑에 온 걸 환영한다고 말했다. 나도 간단히 목례를 하니 개인정보를 쓰는 종이와 화랑의 팸플릿을 건넸다. 나는 카페가 아니라 당황했지만 내색하고 싶지 않아 태연한 척 연기하며 종이를 받으려 손을 벌렸다. 내 손바닥 위에 벚꽃이 있었다. 민망함에 손을 털었다. 왜 벚꽃이 손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벚꽃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을 모면하고자 볼펜을 받아 의심 없이 개인정보를 적어 여자에게 건네주고 팜플릿으로 여자의 시선을 가렸다. 잠시 뒤 여자는 작은 목소리로 즐거운 시간 보내라는 말과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팜플릿의 글씨가 보였다.


"보라색"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할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