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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자 Jul 26. 2018

바간에서 떠오른 그 남자

미얀마 바간의 낭만



미얀마 양곤에서 밤새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한 바간은 새벽 5시였다. 그렇게 7시간을 달려왔으니 피곤할 만도 한데 정신은 똘망똘망하다. 온 세상이 캄캄한 바간, 저물기 직전의 별들이 온 힘을 다해 반짝이던 그 시간. 

아, 이 시간에 뭘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체크인하려는 호텔은 새벽부터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분주한 여행자들의 모습, 무슨 급한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바쁘게 떠난다. 





바간 여행자가 가장 바쁜 시간.

매일 오전 다섯 시 그리고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모든 사람의 머리 위 그리고 이곳 미얀마 바간에 부드러운 햇살이 부서져내리는 시간이다. 그저 햇볕이라기보다는 마치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축복, 행복 그리고 감동을 덮어주는 느낌이랄까. 그곳에 머무는 내내 감동과 행복이 함께했고, 축복받은 기분이 들었다.


 뽀얀 먼지가 가득한 길. 볕이 아직 뜨겁지만 일몰을 보기 위해 나섰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몰 명당을 다 차지해버릴 것 같은 느낌에 달달 거리는 작은 바이크를 힘껏 달려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해가 가장 잘 보이는 사원으로 모두 치열하게 달리는 거다. 사원에 도착하면 숨 고를 겨를도 없이 사원 꼭대기에 올라 선셋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 눈치 작전을 펼친다. 나는 아직 세 번의 일몰과 세 번의 일출이 남았으니 오늘은 맘 좋게 양보할게. 내일은 조용한 곳을 찾아 나만의 선셋을 즐기리. 시간이 넉넉한 여행자의 여유를 부려본다.

이렇게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에서 일몰을 보는 시간. 다들 일몰에 심취한 시간에 나는 문득 그 남자가 떠올랐다.







어린 왕자


미얀마 바간에서.... 어울리지 않게 어린 왕자라니.

어릴 땐 커서 어린 왕자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 평화롭고 작은 별에 나도 가서 좀 살아보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함께 바오바브나무뿌리를 찾고, 정성스레 꽃도 키워보자고. 세상을 살다 보니 세상엔 어린 왕자는커녕 나이 꽉 찬 왕자님도 만나기 힘들다는 것. (남자를 비하하는 건 아니다. 우리네 세상이 그렇더라는...^^)

그래. 그렇게 그 시간에 문득 어린 왕자가 떠올랐다. 의자를 조금씩 당겨 앉으면, 하루 종일 해가지는 걸 볼 수 있다는 어린 왕자의 작은 별과 함께.





나도 어린 왕자처럼 해지는 장면이 정말 좋다.

나는 슬프지 않지만 그리고 이곳은 어린 왕자의 별에 비교를 하자면 너무도 거대하고 복잡한 곳이지만..


그럴 수 있다면 나도 의자를 당겨 앉으며 어린 왕자처럼 43번의 일몰을 보고 싶다고.

그럴 수 있다면 모두들 이렇게 치열하게 바간의 일몰을 가지려 하지 않겠지?

그럴 수 있다면 어쩌면 하루 동안 어린 왕자보다 내가 더 많은 일몰을 보려 할지도 모른다.


그 후, 혹시라도 일몰이 지겨워진다면 별이 촘촘히 하늘을 뒤덮는 시간, 하늘을 보며 잠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거야.


인생에 한 번쯤 이런 행복과 낭만을 마주하는 순간은 꼭 필요하다. 일상에서 맘이 꽁꽁 얼어붙은 우리에게 가끔 꺼내보는 것만으로 얼어붙은 맘이 녹어내리는 추억이 될 테니.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난다. 인생의 낭만을 찾으러.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나눠가진 바간의 일몰. 감동의 크기는 다를지 몰라도, 같은 태양 아래 같은 것을 나누었으니 우린 바간 여행의 동기라는 동질감을 느낀 건 나뿐이려나. 지금까지 여행 중 내 인생 여행지로 꼽을 만큼 큰 감동이 있던 곳. 여행의 여운을 가득 담아 그날을 추억하는 시간. 바간을 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바간의 감동이 가득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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