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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현 Feb 21. 2018

교토에서 도착한 필름

일회용 필름카메라에 담아온 교토의 일상

 예정대로였다면 나의 첫 해외는 다음달 출국을 앞둔 뉴질랜드로의 워킹홀리데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뉴질랜드로 떠나기 위한 대부분의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기다리던 어느날, 갑자기 좋은 기회가 생겨 일본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유독 눈이 많이 내린 올 겨울이지만 아직 제대로된 눈을 한번도 맞아보지 못한 나는, 가장 먼저 나고야의 고즈넉한 마을 시라카와고나 눈축제가 한창일 삿포로를 떠올렸다. 하지만 곧 저렴한 항공편을 따라 간사이행 티켓을 예약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 관광에 구애받지 않고 머무르는 여행을 선호하고, 다른 언어와 낯선 풍경속에 정보없이 그저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을 동경해왔다 . 하지만 막상 처음 해외로 나서자니 최대한 많은곳에 가보고싶다는 욕심이 꿈틀대었다. 그렇게 어디가 좋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최종 결정된곳은 교토.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슷하다는 교토라면, 느린 여행도 관광도 모두 욕심낼 수 있을것 같아 일본에서의 4일을 온전히 교토에만 녹여내기로 했다. 교토여행의 시작에서 가장먼저 했던일은 38장짜리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하나 사는것이였다. 물론 DSLR도 챙겨 갔었지만, 한장 한장을 낭비없이 담기위해 느린 시선으로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그러다 발견한 순간을 필름카메라 특유의 색감으로 기록하며 여행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함이였다. 여행이 끝나던 날, 서울에서 다른 볼일이 있어 부산이 아닌 인천으로 입국해 곧장 홍대근처의 사진관에 필름 스캔을 맡겼다. 교토에서의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풀어내기 전에 교토에서 도착한 4일간의 필름을 먼저 풀어본다.


길을 잃기 위해서

 늦은 저녁 교토역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갈 때도 불안불안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 여행을 시작하자 마자 버스를 잘못 타고 길을 잃었다. 아직은 낯선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어색해 사람들에게 길을 묻지 않고 휴대폰 지도어플에 의존하려 했건만, 사거리 한가운데에서 버스를 타라고 지시하는 구글맵은 나에게 딱히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진 못했다. 낯설은 듯 익숙한 일본의 풍경에 한없이 설레었던 아침의 기분은 버스를 세 번쯤 잘못타고 가방의 무게에 어깨가 뻐근해질 즈음 짜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백 프로 구글맵에 의존하지 않고 나의 다리에 조금 더 의존해보기로 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네 바퀴에서 두 다리로 속도를 늦추니, 점점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관광지가 아닌 교토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졌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끓는점으로부터 조금은 더 내려온 듯 했다. 해탈한 듯한 기분으로 길을 걸으며 어쩐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래를 작게 흥얼거렸다. '길을 잃기 위해서 우린 여행을 떠나네, 어떤 얘기도 하지 않고 어디론가 걸어가네'


거리의 얼굴

고작 교토시 한군데를 여행하는데도, 히가시야마와 아라시야마, 카와라마치 등 동네마다 갖고있는 거리의 분위기가 모두 달랐다. 어떤 거리는 옛 수도의 정취를 품고있고, 어떤 거리는 근대적인 분위기를, 어떤 거리는 일본 영화속에서 자주 보던 풍경을 담고 있다.

이치조지
후시미이나리
아라시야마
히가시야마
가와라마치

교토의 일상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것중 하나를 꼽으라면 버스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 비해 요금은 비싸지만, 훨씬 따뜻하다. 저기 멀리서라도 누가 한명 뛰어오는것 같다 싶으면 버리고 출발하는 법이 없고, 내리는 정류장마다 기사님이 직접 정류장 이름을 알려주고 승객들과 인사를 나눈다. 가끔 관광지를 지날때면 그곳을 해설해주기도 한다. 정지 후 다시 움직일때 '움직입니다' 하고 승객들에게 주의를 주는것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비싼 요금으로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그곳에서는 늘 그래왔던 너무 당연한 모습이기 때문에 답답해하는 사람이 한명 없다.

교토역


오하라 호센인 이끼정원

지하철 밖으로 일본스러운 풍경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베란다형 복도로 이루어진 맨션들이라던가, 세모지붕의 가옥들이라던가, 우리나라와 별 차이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일본스럽다 싶은 철길 건널목.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것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달리는 맞은편 전철을 바라보는것이었다.

후시미이나리 여우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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