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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Sep 26. 2019

결혼 1주년 캐나다 여행 Epilogue

이렇게 설렘이 없던 여행은 처음이야




오로라, 레이크 루이스, 로키 산맥, 빙하

경이로운 대자연을 마주한 캐나다 여행

그 기억을 위한 기록을 시작하며...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솔직히 이번 여행은 큰 기대나 설렘이 없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 수속을 하는 순간까지도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도 했으며

막연히 그냥 끌리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전날 밤까지도 목적지를 유럽으로 바꿀까 고민했을 정도니까.


올해 3월경  캐나다행 국제선 비행기표를 제법 일찍 예매해두고

대략적인 동선과 숙소 예약까지 마친 뒤 수개월 이상을 잊고 지냈다.

(마지막 한 달 전에 국내선 한 구간 항공권 예매를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배가 넘는 금액을 주고 더 구린 스케줄의 항공권을 구매해야 했다.)

그쯤부터 다시 여행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보려는 찰나

여행을 채 보름 앞둔 시점에서 급제동이 걸리게 된다.

바로 신랑 직장에 갑자기.매우.중요하고.급박한. 일이 생겨서 신랑의 휴가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추방과 멀미,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특히나 이번 여행은 신랑이 오랫동안 가고 싶어 했던 캐나다행이라 그는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더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매일 밤 야근은 물론 주말에도 내내 출근하며 어떻게든 휴가를 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출발하는 날 새벽 3시에 돌아온 남편은 겨우 캐리어에 옷가지 몇 개만 욱여넣고 새우잠을 자다가 새벽같이 다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점심까지 바쁘게 업무를 하다가 뛰쳐나왔고, 우리는 그제야 겨우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하필 태풍이 몰려오던 날이라 비가 억수같이 왔다. ‘설마 비행기는 뜨겠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쿵 흔들렸다. 나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영문을 몰라 토끼눈을 하고 심장만 콩닥콩닥 했다. 좀처럼 감정 기복이 없는 신랑이 어쩐 일인지 짜증 섞인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빗속으로 차문을 열고 나갔다. 1,2 차선이 좌회전 차선인 도로에서 우리는 2차선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주행 중이었고, 1차선에 있던 차량이 직진을 하겠다고 그것도 노란불에 가속을 하다가 뒤에서 우리 차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안 그래도 비행기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차 사고라니. 이번 여행은 정말 못 가는 것인가 싶어 좌절스런 마음으로 보험사 직원을 기다렸다.  전화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보험사 직원은 쏜살같이 나타나 사고 현장 사진을 찍고 사고 접수를 한 뒤 우리를 보내줬다. 상대측 보험사 직원이 오지 않은 데다가 가해 차량 운전자는 우리보고 왜 2차선에서 직진을 해야지 좌회전을 하냐며? (좌회전 차선인데?) 헛소리를 해대는 통에 골치가 아프겠다 싶었는데, 우리 측 현장 출동 직원이 현장 채취가 완료되었으니 우리는 차를 몰고 떠나도 괜찮다고 했다.




공항 가는 내내 비가 많이 와서 속력을 내려야 낼 수도 없었다. 서해대교 들어서야 마음이 놓여 나는 옆자리에서 웹 체크인을 하고, 공항 도착, 주차, 수하물 체크인, Security check, 출국 심사까지 일사불란하게 마치고 나니 탑승 시작 시간까지 딱 30분 정도가 남았다. 탑승권을 손에 들고 라운지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들이켜고서야 ‘아 이제 진짜 가는구나’ 싶었다.

정말 이렇게 비행기 타서까지 낭만도 설렘도 하나도 없는 여행을 떠나기는 처음이었다.




언제나 여행지에 대한 환상과 기대로 가득 차서 수많은 상상을 하며 지루한 비행을 견디곤 했었다. 미리 꼼꼼하게 여행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준비해둔 일정표 같은 건 없어도 적어도 어디에 가서 뭘 보고 싶다든지, 어디 가서 뭘 먹고 싶다와 같은 막연한 희망 사항은 몇 개쯤 있기 마련이었는데 이번 여행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미리 알아볼 시간도 없었거니와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여행지에 대한 기대를 채우는 행동은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았고, 그러다 그저 멀뚱멀뚱 출국하는 날을 맞았더랬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캐나다에 내던져졌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캐나다 밴쿠버 공항, 캘거리행 국내선 환승을 기다리며.



기대감이 없던 탓일까, 이번 여행은 유독 충만하고 행복했다. 남편과 함께한 여행 모든 곳이 좋았지만 이번 여행은 유독 짙은 여운이 남는다. 미주나 동남아 여행에서는 늘 좋은 기분이 여행 그 당시뿐, 귀국하고 나면 금세 휘발되어 사라져서 기회만 된다면 언제나 유럽으로의 여행을 줄곧 꿈꿔 왔는데  별 거 없을 줄 알았던 캐나다가 이렇게 좋을 줄 꿈에도 몰랐다.


도대체 나는 뭐가 그렇게 행복했을까, 이 감정이 희미해지기 전에 내 기억을 위한 기록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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