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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Sep 27. 2019

내 사진 이야기

경력 20년 차 포토 꿈나무 치과 의사 이야기


Disclaimer: 저는 전문 사진작가가 아닙니다. 사진을 매우 좋아하는 치과의사입니다.

휘황찬란하고 멋진 풍경 사진들로 가득한 작가님들의 프로페셔널한 여행 사진이 익숙할,
어딘가 어설픈 B급 감성의 사진들과 함께하는 이 포토 에세이가 낯설 여러분들께 :)





As far as knowing when to shoot, I always relied totally on my instinct.
I believed I could feel when there was a good picture.

Linda McCartney



금방 빠졌다가 쉽게 질리는 내가 아마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좋아한 건 사진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한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photo by @sungqua Kenya, 2017


photo by @kyohnam New york, 2017


얼마 전 엄마 집에서 내 오랜 짐들을 정리하다가 한 무더기의 사진이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아마도 초등학생 시절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화된 사진들. 신기하게도 그 무렵 찍은 사진에도 하늘, 구름, 꽃 사진이 많아 놀랐다. 나 생각보다 일관된 취향을 가지고 있구나-

그때 들고 다니던 카메라는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더 이상 찾을 수도 없었지만 그 무렵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멈춰 서서 셔터를 누르고, 한 롤을 다 찍으면 돼지 저금통에 열심히 모은 용돈으로 동네 사진관에 필름을 들고 가 인화를 맡기고,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인화된 사진을 찾으러 가던 발걸음이 기억난다.

지금처럼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기 한참 전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24매 혹은 36매의 필름 한 롤을 다 촬영하고 인화를 맡겨 인화된 사진을 받아볼 때까지 내가 찍은 사진이 과연 어떻게 필름에 비쳤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매우 어렸고 매일 출사를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어린 나에게는 필름 값도 사진 인화비도 비쌌기 때문에 어떨 때는 한 롤을 다 채우는데 수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인화된 사진을 받아보면 일본의 설경과 우리 집 앞의 노란 개나리가 함께 있기도 했다. 그래도 그런 재미와 낭만이 있었다.




그렇게 오래 사진을 좋아했으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사진을 배워본 적이 없다. 대학 시절 사진학 개론을 수강해보려 했으나 틀에 박힌 커리큘럼대로 학습을 해야 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져서 그만뒀고, 그 이후로도 언제나 내 사진은 내 마음 가는 대로 내 맘대로 대충대충이었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우선 카메라라는 ‘기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일 텐데 기계적인 부분을 공부하는 데에 나는 도무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조리개, 셔터스피드, 감도 이런 단어들은 나를 오히려 사진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photo by @kyohnam New york, 2017
The real thing that makes a photographer is more than just a technical skill, more than turning on the radio. It has to do with the force of inner intention. I have always called this a visual signature.
- Linda McCartney


나에게 있어 사진의 가장 큰 가치는 ‘그 순간의 느낌을 담는 것’이었기에 잘 만들어진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들고, 적당한 화각의 렌즈로 바꿔 달고, 화이트 밸런스부터 조리개, 셔터스피드 등등 온갖 세팅을 맞춘 뒤 사진을 찍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 순간의 감흥이 사라진다는 게 또 다른 이유라면 이유였다.




I think you just feel instinctively, you got to just click on the moment.
Not before it and not after it.
I think if you are worried about light meters and all that stuff, you just miss it.
For me it just came from my inners, as they say.
Just excitement, I love it – I get very excited.

Linda McCartney




그렇지만 그렇게 언제나 적당히, 대충, 감에만 의존해서 찍다 보니,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질 때도 있었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 풍경이 너무 멋진데 왜 사진에는 담기지가 않는지, 프레임 안의 어느 부분에 감정을 실어 어떤 느낌을 주고 싶은데 왜 그게 느껴지지가 않는지, 왜 이리 재미가 없고 밋밋할 때가 많은지. 특히나 나는 내 눈으로 본 것 같은 자연스러운 느낌의 사진을 좋아하기에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과한 후보정을 지양하는 편인데, 그러려면 원본으로 최대한 내 이야기를 프레임 안에 담아내야 한다. 그 후에 약간의 노출 조정이나 색감을 만져서 느낌을 살리기는 하지만, 애초에 크롭 센서 미러리스 카메라로 담아내는 화각이나 심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더라.


photo by @kyohnam New york, 2017


풀프레임 바디에 낮은 조리개 값의 비싼 렌즈 이런 것들은 내게는 사치라고만 생각했다. 어차피 잘 다룰 줄도 모르는 나에게 비싼 장비를 들려줘봐야 원래 찍던 사진 하고 별반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주로 여행 가서 사진을 많이 찍는 나에게 크고, 무겁고, 비싼 장비가 경제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버겁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원래 쓰던 가볍고 편한 스냅용 카메라로 과연 충분할 것이냐. 광활한 대자연과 밤하늘의 오로라를 담기엔 턱없이 부족할 게 뻔했다. 로키산맥까지만 하더라도 광각의 웅장한 사진을 포기하고 아마 평소대로 다녔을지 모른다. 평생 처음 보게 될 오로라가 내 발목을 잡았다. 오로라만큼은 최소한 사진으로 찍고 싶었다. 멋들어진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오로라를 봤노라는 인증샷 정도는 남기고 싶었다. 그러려면 장비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처음 써보는 소니 a7r iii 바디에 1635GM 렌즈를 가지고 떠났다. 렌즈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내 성격상 여러 개의 렌즈를 들고 다니면서 바꿔 찍을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아서 과감하게 단렌즈를 포기했다. 내가 예전에 카메라를 살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내가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사진작가 친구(@kyohnam)가 추천해준 단 하나의 렌즈 1635GM 1개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챙겨갔다. (역시 그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

(소니 협찬은 아니지만) a7 riii는 저조도에서도 굉장한 노이즈 억제력을 보이며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iso를 1만 가까이 올려도 깨끗하고 선명한 밤하늘 사진이 얻어졌다. 신세계였다. 처음 만나보는 풀프레임과 16mm 광각의 조화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괜히 비싼 카메라 사는 게 아니구나^^;; 내가 써온 카메라로는 도저히 담아내지도 못했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대자연을 마주한 나는 생전 처음 다뤄보는 카메라에 내 눈앞의 생경한 모습들을 담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처음으로 나름 이런저런 많은 세팅값들을 조절하며 온전히 매뉴얼로 조작하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새로운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여태까지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직감적으로 셔터를 눌렀는데, 하나의 프레임 안에 나의 이야기와 감정을 담기 위해 조심스럽게 구도를 잡고, 숨을 고르고 뷰파인더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세밀하게 포커스 링을 돌리며 초첨을 맞춰보니 그 안에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주로 찍던 골목 풍경이나, 인물 스냅이 아니라 광활한 대자연과 우주를 앞두고서 어쩌면 나의 태도의 변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Nature is so powerful, so strong.
Capturing its essence is not easy - your work becomes a dance with light and the weather.
It takes you to a place within yourself.

Annie Leibovitz



새로운 사진관에 아직은 낯설고 실력도 미숙하지만, 사진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어 흥분되고 기쁘다. 이제는 ‘그렇게밖에는 찍을 줄 몰라서’ 본능적으로 대충 막 찍는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와 렌즈라는 장비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능숙한 스킬을 갖춰서 때에 따라 내가 원하는 사진을 담을 수 있도록 ‘나만의 균형’을 찾아야겠다.


앞으로 올라올, 처음의 어설픈 풋풋함과 설렘이 한껏 담긴 나의 처녀작들을 열린 마음으로 감상해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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