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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윙맨 May 23. 2021

젠더갈등 그 시작과 이유

2016년 스타벅스, 배려가 강요로 바뀌며...

젠더갈등은 현재 가장 주요한 사회적 갈등이다.

혐오의 언어와 행동이 난무하며, 가족끼리도 미워하며, 유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진영논리를 강요한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한다.


젠더갈등이 왜 시작된 거야?



시작과 원인을 알아야 이 갈등을 끝낼 수 있다.

멍청한 정치인과 행정가들은 이런 이해가 1도 없이, 멍청한 꼰대식 사고로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그전에도 극성 페미와 일베들의 부분적인 다툼은 있었지만, 사회적 갈등은 아니었다.

일반 사람들은 그들을 극성이며 천박한 애들 정도로 치부했었다.




2016년 어느 날 젠더 갈등은 사회적 갈등으로 태동했다.

2016년 스타벅스였다.


스타벅스는 나라를 위해 2년간 자신의 젊음을 희생하는 청년들을 위해 작은 이벤트를 시작했다.

휴가 나와서 스타벅스에 들르는 군 장병들에게 '오늘의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일반적인 시민들의 상식이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래. 우리 군대 간 아들들 많이 고생하고 있었구나. 나는 뭐 해줄 거 없나?

스타벅스, 외국 브랜드이지만 한국에 로컬라이징하려고 노력하네. 대견하군

에이 오늘의커피 한 잔이 뭐야? 애들 달달한 거 좋아하는데 프라푸치노!



이런 반응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우리 사회의 젊은 남성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편성이다.





하지만 극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분석이 뭔지도 모르고, 마케팅이 뭔지도 모르는

이런 멍청한 녀석들이 혐오하고 선동하고,

상당수 여성들이 여기에 '동조'해버렸다.

극단적인 애들의 멍청함은 어쩔 수 없다.

상당수 여성들이 동조하면서, 이 멍청한 선동이 '사회적 논란'이 되며 여러 뉴스에까지 보도됐다.



젠더 갈등이 대한민국 사회에 최초로 공식적으로 태동한 시점이었다.

일방적인 혐오가 아니라 왜 갈등이 됐을까?

이 시작점에서 그 속성을 읽어야 한다.

배려를 강요하고,
희생을 조롱한다.


기업들은 이 혐오에 굴복했다.

기업은 사회적 보편성같은 것 관심 없었다. 논란되지 않기만을 최대한 가라앉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스타벅스에서 거둔 승리로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것에는 지랄을 하고, 불매를 선동했다.

기업은 쉽게 굴종했고, 그들은 승리의 꿀맛을 봤다.

몰지성과 무논리가 통하는 경험을 했다.

극단의 혐오주의자들에 일반의 여성들이 여자 편이라는 명분으로 점점 더 많이 동조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그들은 페미니스트라는 이름과 명분을 내걸고 대놓고 혐오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제 페미니스트의 헤게모니를 차지했다.

이들 페미들의 행동은 항상 아래의 목적이었다.


배려를 강요하고
희생을 조롱한다


기업은 몰라도 정부는 그 중심을 잡아야 했지만,

배려를 강요하고, 희생을 조롱하는 방식에 동조해버리며 젠더갈등을 심화시켰다.


이것이 젠더갈등이라는 사회적갈등의 이유이다.







일반 전철칸 vs 여성 전용칸 - 같은 시간(부산의 퇴근시간)






분명히 배려라고 적혀있지만,






강요로 이행했다.

내가 새로운 정부에게 무형적 가치를 회복시켜달라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배려와 희생은 무형적 가치다.

우리 사회가 오래도록 정성스레 구축해왔던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돈으로 추산할 수 없는 가치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이 무형적 가치를 무너트리는 것이 시작됐었다.

무형적 가치의 파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바뀐 이상 전 정권의 탓을 할 수가 없다.

무너진 무형적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은 현 정부의 몫이었다.



하지만 인지조차 못 했고, 오히려 더 나아가버렸다.

가장 심각하게 나아가버린 영역이 바로 '젠더 이슈'다.

다른 영역도 심각하지만, 무형적 가치가 붕괴되면 <진영논리>로 즉각적으로 나뉠 부분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행정가, 언론인 모두 여기에서 무력했다.

일반 시민들도 조금만 고민하면 알 수 있는 사실에서 무능했다.

그렇게 젠더정책은 아래의 기조 속에서 추진돼왔다.


배려를 강요하고
희생을 조롱한다


무형적 가치를 몰락시켜버리며, 당연하게도 젠더 갈등은 극화됐다.

강요로 넘어가는 순간, 일방적인 손해를 감수하라는 의미가 된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지저분하고 첨예한 사회적 갈등이 된 이유다.

여기, 남성의 배려와 희생으로만 이어지는 최종 보스가 하나 있다.

바로 군대 문제다. 젠더갈등의 속성이 추잡하고 격화되는 이상 당연히 군대 문제는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군대는 배려와 희생이 없다면 돌아갈 수 없는 시스템과 조직이다.

그런데

배려와 희생을 하기 싫게 만들다면?

불이익을 더 이상 감당하기 싫다면?





군대간 게 벼슬,

젠더갈등 속에서 그들이 쉽게 내뱉는 말이다.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감수했던 이유는, 여성들의 존중과 감사 때문이었다.


배려와 희생이 무형적 가치인 것만큼
존중과 감사 또한 무형적 가치이다.


상대가 무형적 가치를 포기한 순간, 나도 무형적 가치를 발휘할 이유가 없어진다.

존중과 감사 없이, 배려와 희생은 없다.

정부가 국방의 의무를 감수하는 20대를 위할 거라면,

월급을 올리거나, 휴대폰을 사용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 조롱을 최우선적으로 막았어야 한다.




이후에 군 비리를 척결하고, 무능하고 부패한 군인들 잘라내고, 제대로 조직 컬처를 만들어서,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고, 제대했을 때 적절한 보상을 해줬어야 한다.

그게 희생으로 돌아가는 군이라는 시스템과 조직을 지키는 방법이다.

이 젠더 갈등을 가장 격화시키는 것은 이제 페미당이 된 정의당이다.


말뿐인 제안?

페미들과 그들에 동조하는 이들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인데, 자신들이 받는 <배려와 희생>은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한다.(사실 최상부 페미는 오히려 그 배려의 제거를 통해 더 고질적인 갈등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본다.)

여성 징병제, 방법은 간단하다.

개인적으로 나도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군가산점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군대라는 일방적인 희생을 감수한 모든 이들에게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기술직(의료, 간호, 법무 등)은 입대를 통해 현재 군 시스템의 부실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고,

일반직은 체력 측정을 통해서 전투병과에 어울리는 신체 능력을 가진 이들은 전투병과로,

그 외는 2년간 방산업체나 공장 등의 회사에서 일하게 하고 받은 2년간의 연봉은 군장병들 제대할 때 전역비로 사용하게끔 70% 정도는 원천징수해버리면 된다.

또, 여성이라고 신체능력이 약하다는 꼰대식 사고와 배려로 편한 행정직이나 관리직 위주로 배치하면 또 다른 젠더갈등의 시작이 된다. 그런 거 없어야 한다.

2년간의 경력을 쌓았으니 군가산점 문제도 사라진다.

조금만 고민하면 여성징병제, 전혀 어렵지 않다.

어려우면 나에게 얘기하던가, 사회적 합의 가능하게 꼰대식 사고 없이 깔끔하게 설계해줄게.

아직까지 무조건적인 배려와 희생이라는 전통의 허들이 조금은 잔존해 있을 뿐이다.

임계치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브레이브걸스가 군인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군인들의 희생과 배려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무대를 했다.

성난 페미와 못난 여성과는 다르게, 그들은 군인의 희생에 감사했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에 따뜻함을 제공해 주는 무형적 가치의 모습이다.





군바리는 친근하게 애칭으로 쓰는 말이지,

군바리를 조롱하며 멸칭으로 쓰는 시점에,

너에 대한 배려와 희생은 종료된다.

이제 이거 피곤하잖아.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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