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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라 Apr 11. 2018

연애감정

본성의 완전한 사랑을 향한 그리움의 표현; 연애감정

연애감정은 왜 생기는 것일까?

누구라도 어느 순간 갑자기 불쑥 일어나는

연애감정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젊을 때는 이런 감정들이 즐겁고 유쾌한 오락이며

연인은 청춘의 특권이라 할 정도로 

누구나 긍정적이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쳐서 

항상 연애감정에 빠져서 살게 된다면 

삶이 주는 다양한 경험들을 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미 결혼한 결혼한 기혼자들이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물론 잠시 잠깐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가정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거나 

배우자와의 불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연애감정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원초적인 그리움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은 내면의 '참나'인 본성을 향한 그리움인 것이다.

'참나'인 본성은 무극 상태로, 완전한 사랑이다.

그 완전성으로부터 파동 하는 에너지인 

불완전한 상태의 에고가 생겨난다.

에고가 생겨남과 동시에 본성과 분리되면서

에고는 그 사랑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된다.


에고에게 본성은 '참부모'이자 '고향'과 같은 것인데

그 본성과 분리되니 항상 그 완전한 

사랑의 품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와 헤어진 아이가 부모를 그리워하듯,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항상 가슴속에 아련한 그리움을 갖고 산다.


에고는 항상 '사랑'에 목마르다.

에고가 태어나 육체의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자라지만

육체의 부모는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신성인 본성이 주는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에고는 항상 사랑에 목마르게 되고

애정결핍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에고가 태어나 처음 만난 이성이 아빠 엄마인데

머리로는 아빠 엄마이지만 분별심이 없는 

잠재의식에서는 남자 여자로 인식된다.


어린 시절,

처음 만난 이성인 아빠에게 사랑받고 자란 딸은

사랑이 충족된 만큼 여자로서의 자존감도 높고 

남자들에게 쉽게 연애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아빠에게 사랑받지 못한 딸은

그 사랑을 세상 남자들에게서 충족하려 든다.

그녀에게 있어 세상의 남자들은 

잠재의식 안에서 볼 때 모두 아빠인 것이다.

그래서 아무 남자에게나 쉽게 

연애 감정이 일어나고 여자로서 

자존감이 낮아 유혹에 잘 넘어간다.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자란 아들은 

남자로서의 자존감이 높아 함부로 

아무 여자나 사귀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남자일수록

엄마에게서 못 받은 사랑을 엄마로 투사된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 구하게 될 것이기에 

한 여자에게 만족 못하는 바람둥이가 될 확률이 높다.


모든 사람들은 크든 작든 애정결핍이 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으로 착상하는 그 순간부터

태아의 사랑에 대한 갈구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본성이 만든 에고는 본성과 분리되는 순간부터

본성의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육체의 부모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사랑을 줄 수도 없거니와 

태아가 의식체이고 사랑을 갈구하는 

사실조차 모르기에 에고는 더욱더 

애정을 갈구하는 상태가 되어간다.


태아 때와 자라면서 사랑을 받지 못해 

애정결핍 상태가 심해질수록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더 심해지고 

한번 받은 사랑과 관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랑에 대한 집착도 심해진다.


본성의 사랑만이 '애정결핍'을 치유할 수 있다.

애정결핍 에고가 본성의 사랑을 향한 그리움을

현실의 이성을 통해 표출한 것이 연애 감정이다. 

따라서 애정결핍이 심할수록

삶에서 더 빈번하게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된다.

또한 집착도 심해서 의처증이나 의부증 모두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져 달라는 

심한 애정결핍 증상인 것이다.


에고는 진짜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상대가 누가 되었든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면에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을 충족시켜줄 사람이라면 

사실 아무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서

애정결핍이 치유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타인의 사랑을 많이 받아도 

그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에고에 애정결핍은 본성을 향한 

근원적인 그리움이기에 본성과 하나 되기 전에는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충족시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들은 

모두 상대를 통해 사랑의 근원이자 참부모이며 

영원한 '님'인 본성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한 것이기에 

본성이 투사된 이성에게 완전한 사랑을 

기대한 그들은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리움, 외로움, 허전함, 연애감정 등으로 느껴지는

이성을 향해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인간 내면 근원의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나타난 것으로,

밖에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오직 내면으로 들어가 근원의 사랑인 본성을 만날 때,

그대만을 늘 사랑해주는 진짜 '님'인 본성을 만날 때,

에고의 모든 사랑에 대한 갈구는 사라지고

안식을 얻게 된다.


본성은 그대의 진짜 '님'이다.

언제 어디서나 늘 그대 곁에 존재하며

오직 그대만을 보는 '님',

맑고 곱고 순수하며 아름답기 그지없는 '님'

불평불만이 전혀 없고 늘 고요하지만 

항상 그대만을 사랑하는 '님'이다.


사랑의 태양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는 

내면의 영원하고 무한한 진짜 '님'을 찾을 때,

그대의 사랑을 향한 모든 욕망과 갈등은 끝이 난다.

드디어 완전한 사랑을 찾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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