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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이 Mar 24. 2018

하루하루 반짝반짝
빛나는 날들이었다

Camino Frances



사실 까미노를 고민했던 적이 한번 있었다. 포르투칼길 위에서 활짝 웃는 가까운 지인의 사진속 얼굴을 보고서 말이다. 프랑스길을 언젠가 다시 떠날거랄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한다. 아 마음속에 찐하게 남은 여행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호기심이 생겨 책한권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언젠가 떠나게 될 그 길을 어럼풋이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근데 매번 여행을 하려고 할때마다 까미노는 순위에서 뒤로 미뤄졌다. 왜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가는 길이라 재미가 없어보였던거다. 새롭지 않고 다들 가는데 굳이 내가 갈 필요도 없을거같은데 이런 생각말이다. 내가 동남아 여행을 결국 못가게 되는 이유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동남아는 가까우니까 나중에 가야지 미뤄두게 된다. 사람은 역시 나이와 비례해서 현명해지는건 아닌게 확실하다. 물론 길을 걷고 왔으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왜 우리는 경험하지 않고서는 깨닫지 못하는것일까. 이 멍청이같으니라고. 


제작년엔 까미노길을 갈까 말까 고민을 하고서는 히말라야 EBC 트레킹을 떠났다. 고산병으로 죽을 고생을 한후 이제 다시 내 평생에 고산은 오르지않겠다라는 결심만 가지고 왔지만. 슬프게도. 역시 자기 자신을 안다는건 중요한 일이다. 평생 그 고민을 하고서 죽을때까지도 잘 모르고 끝날테지만 말이다. 


다시 1년이 지났다. 잠깐 내팽겨쳐뒀던 까미노가 생각이 났다. 겨울에 떠나기에도 좋아보였다. 다른 여행지는 북유럽이라 눈속에 파묻힐것 같아서 포기했다. 이제 고생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나.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계획을 세우고 매일매일 까미노카페를 드나들었다. 사람들의 사진이며 준비사항을 보면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생장까지 가는길이 멀었지만 여차여차해서 도착했고 그렇게 길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왔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 길 위에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나서는 두사람 혹은 여러사람을 묶는 계기라는게 취미활동, 회사등의 관심이나 거리가 멀어지면 당연히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관계들 뿐이다. 그렇기에 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굳건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소홀해지면 관계는 금방 멀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모두가 하는 관계에 대한 고민은 이런것이지 않을까 하지만. 


길의 첫날 함께 했던 스페인 아저씨 알렉한드로, 팜플로나에서 헤어지고나서 메세타로 들어가던길에 만났던 일본인 친구가 그와 함께 며칠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나와 헤어졌지만 그는 이 길위에 어느곳에 나와 함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까미노길에서는 모두가 한가지의 목표를 함께 가진다. 산티아고 혹은 피니스테라. 

어느곳에서 왔던 어느길을 지나고 있던 우리는 항상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까미노 블루가 찾아오는건 한달여를 그렇게 하나에 몰두하며 걸었는데 그 목표가 끝나버림에 대한 공허함같은거겠지. 그리고 그 길위에서 만난 이들과 헤어지게 될때의 서운함. 




하루하루가 반짝이는 날들이었다. 



길을 끝나고 친구에게 소식을 전했다. 드디어 끝났어!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또 다른 너를 발견했어? 삶의 어떤 진리를 깨달았어? 진지한건지 농담인지 모를 질문을 던졌다.

흠 잘 모르겠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조금 더 알 수는 있었지만 나는 그냥 하루하루가 반짝이는 아름다운 날들이었던거같아. 하루하루가 좋았어. 그게 내 진심이었다. 다른 어떤 고민도 없는 단순한 삶. 무엇을 먹을지 어느곳까지 걸을지 내 몸의 상태에 좀더 민감하게 생각하고 다른이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들을 하고 단지 그런것만이 하루를 채우는 단순하지만 풍요로운 삶. 이런게 앞으로도 내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부분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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