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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라테스 Dec 04. 2022

박사과정이라는 긴 어둠의 터널

재미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저는 학생입니다.

네이버 사전에 "학생"을 검색해보니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

이라고 나오네요. 

맞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닙니다. 

하지만 고백합니다, 요즘엔 딱히 공부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하, 어제는 자려고 눕는데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오더군요.

'아, 존나 하기 싫다'.

여기서 하기 싫은 건 물론 '공부'입니다.

누군가는 저에게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네요.

'혹시, 협박을 당해서 공부하시나요?'

아, 협박을 당해서 공부를 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제 전공에서 많이 쓰는 용어를 빌리자면, 저의 자유의지로 학생이 되는 것을 선택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공부가 재미가 없을 뿐 만 아니라 '존나' 하기 싫어졌을까요? 

그건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처음에는 나름 다른 선택지보다 공부를 하는 게 더 재미있어서 선택했던 것 같거든요. 

머리를 굴려서 몇 가지 이유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너무 오래 해서 질렸다.

저는 한국에서 공부한 것도 모자라 해외로 나온 지 벌써 10년 차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에끌레어를 먹어도 2개면 질리는데 10년 동안 한 우물을 파다니 질릴 만도 한 것 같습니다. 

아 물론 10년 내내 공부한 건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하게 밝혀두고 싶습니다. 

2. 보상이 없다. 

제가 사는 이곳에는 다양한 나라의 유학생들이 있고 다양한 전공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과계열의 학생들은 석사 과정에서도 대학원에서 돈을 받으며 공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과는? 

그런 거 없습니다. 

물론 몇몇 학생들의 경우에는 장학금의 기회가 열려있기도 합니다만

저는 아닙니다.

사실 올해 장학금을 지원했다가 떨어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저는 딱히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서' 같은 말을 붙였겠지만

살다 보니 자존감만큼 중요한 게 없어서 저런 생각은 억지로라도 안 하려고 합니다. 


아! 갑자기 이 대목에서 더 이상 번호를 매겨가며 공부가 재미없는 이유를 열거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공부가 재미없고, 공부를 하는 게 업(業)인 제가 제가 선택한 일을 '존나' 하기 싫은 매우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어떤 '보상'과 관련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렇게 되니 이곳에 글을 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공부뿐 아니라 이것저것 의욕이 없어서 뭐 하나를 하려고 해도 생각만 길게 하고 막상 실행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글을 썼는데 뭔가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의 원인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기분이 괜스레 좋아집니다. 


공부가 재미없는 건, 보상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 물론 금전적인 보상도 보상이지만 제가 말하는 보상은 조금 더 복잡하니 잠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어떤 사람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어떤 좋아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한 욕구로 인해 발생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프면 마트에 갑니다. 

먹을 것을 사기 위해서 마트에 가서

집에 가서 밥을 하기 위해 장을 봅니다.

장 본 것들을 가지고 요리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서

배고픔을 덜기 위해, 혹은 맛있는 것을 먹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위해 음식을 하고 그것을 먹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행위에는 욕구로 인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서 우리는 어떤 즐거움을 얻습니다.

그 즐거움을 행복이라고 합니다 (사실, 행복은 더 복잡하지만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저는 '공부하면서 행복하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을 해결했을 때 오는 기쁨으로 공부를 지속해 왔는데, 

풀리는 기쁨보다 꼬이는 짜증이 더 커진 지 오래이기도 하고

이걸 내가 한다고 해서 확실한 직업을 얻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혹시라도 대단한 글을 썼다고 해도 그것이 물질적 보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게 이 필드의 숙명 같은 것이거든요.


정신적인 기쁨뿐 아니라 물질적 기쁨도 없으니 제가 존나 하기 싫고 재미가 없고 행복하지 않은 게 당연해 보이시지요? 

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건 제가 아직 포기를 안 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포기했는데 저는 그대로입니다. 

왜냐고요? 

예전에 읽었던 기사에서 나왔던 비유를 들어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대학원생으로서의 제 삶은, 마치 고소공포증을 가진 줄타기꾼 같습니다. 

줄을 타는 게 너무 무섭고 괴롭습니다. 

하지만 시작점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고

여기서 떨어지자니 그것도 또 죽을 것 같습니다. 

유일한 탈출구는 처절하게 이 악물고 이 외줄을 건너 내는 것입니다. 

저는 이 줄을 건널 수 있을까요? 

그것 역시 다 저에게 달린 일입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죽을 만큼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해내야만 하는 게 대학원생의 숙명입니다.

어쩌면 제가 선택했으니 이것은 제 '업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역설적이긴 하지만, 미치도록 처절하기 때문에

제가 대학원생으로서 참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이곳에도 전해보겠습니다. 

처절해서 잘 살고 있다는

비참해서 아름다운 제 삶의 한 페이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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