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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라테스 Oct 08. 2023

가난한 유학생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나를 열받게 하는 사람들

1. 예전에 외국에서 혼자 힘으로 살아남아야 했을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나는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뿌리고 돌아다니는 게 하루 일과였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의 백화점 안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초밥집이 있었는데

장을 보러 갈 때 그 초밥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 초밥집에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얼마 뒤 이 가게에서 채용공고가 났고

나는 지원을 해서 판매직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원하던 일도

막상 직접 들어가서 경험해 보니

멀리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부정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것들을 다 알게 된 것은 그 일을 그만둘 때가 다 되어서였다.


2. 나는 유학생활 간 총 다섯 번의 이사를 했다.

첫 번째로 살던 곳은 어학원에 있던 기숙사였다.

당시 도저히 방을 구할 수가 없어서

기숙사의 2인실 방을 나 혼자 사용했었다.

그렇게 2인실 방을 쓰다가 6개월 정도 뒤에 같은 기숙사에 있는

방으로 이사를 했다. 

세 번째 집은 내가 대학입학과 동시에 도시를 옮기면서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지만

같이 사는 멤버들이 바뀌고 나서 난장판이 되었다.

공용부엌은 항상 엉망이었고

음식물을 넣는 쓰레기통은 비우는데 1분이면 되었지만

그게 귀찮아서 3주간 방치하는 코소보에서 온 녀석이 있었다.

결국 부엌은 항상 파리와 구더기가 넘쳐났고

나도 실랑이에 지쳐서 집을 나오게 된다.

그렇게 네 번째 이사만에 나는 작게나마 개인 부엌과 개인 화장실을 가진 방으로 이사를 했다.

처음엔 나만의 냉장고 (너무 작고 밤에 매우 시끄럽긴 했지만...), 나만의 요리공간, 나만의 화장실이 생겼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 집에서도 한 2년 살다 보니 이웃들이 바뀌었고

방이 너무 작고 부실공사를 해서 그런지 옆방애가 걷는 소리에 온 방이 쿵쿵- 울렸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다섯 번째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3.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친구네 집에 가던 길목에 있는 집이었다.

왕복 4차선 도로의 끝에 위치한 이곳은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무려 6대나 있는 교통의 요지다.

동네 분위기도 조용하고

건물도 깨끗한데 (나는 대리석으로 이렇게 깔끔한 복도를 가진 집에 처음 살아봤다. 이전에는 다 오래된 나무로 된 집이었기에)

심지어 위치까지 좋다.

항상 버스를 타면 '와- 저런 집엔 누가 살까?'라고 했던 그곳에

내가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처음엔 너무나 좋았다.

방의 크기도 더 커졌고

베란다도 있었으며

내 방은 도로 쪽이 아니라 다른 집의 정원이 보이는 조용한 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 집도 멀리서 볼 때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볼 때는 꽤나 많은 비극적 요소들이 숨어있었다.

먼저, 이웃집에 미친놈들이 산다.

방의 창문을 열면 다른 집의 정원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이 집에는 10명 이상의 인간들이 모여 살고 있다.

뭐 하는 놈들인지 밖에 잘 나가지 않고

틈만 나면 정원에 나와서 음악을 틀고 시끄럽게 떠든다.

그러면 그 소리는 마치 오페라 하우스처럼 울려서 내 방을 관통한다.

대화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클럽음악을 큰 소리로 트는 것

그것도 밤늦게까지 틀어놓는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밤 열 시부터는 소음을 내면 안 되는데 이 미친 이웃들은 그런 걸 모른다.

몇 번 경찰을 불렀어도 그때뿐이긴 한데

다행히 좀 경험치가 쌓여서 언제 경찰을 불러야 이 미친 파티를 해산시킬 수 있는지 타이밍을 알게 되었다.

(참 슬프다.. 이런 걸 알아야 하다니)

이 미친 이웃이 날이 추워지면서 좀 잠잠해지나 싶었더니

이제는 어디선가 베란다에 담배꽁초가 날아든다.

처음에는 뭐 실수겠거니 했는데

지난주에는 벌써 다섯 번째로 우리 집 베란다에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었으며

그전에는 한번 건조대에 걸어놓은 수건에도 떨어져 있던 적이 있어서 더욱 화났다.

문제는 윗 층에 올라가니 위층애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한다.

사실 열받아서 올라갔는데 그의 눈과 행동을 볼 때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고

흡연자라면 나야 할 담배냄새도 집에서 전혀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각선이든 어디서든 담배를 던진다는 말인데

자주 던지는 게 아니라 대충 한 달에 한번 던져서 

이놈을 잡을 수도 없어서 더 열이 받는다.


왜 이렇게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은 걸까?

장기간의 유학생활에 지친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걸까?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살고 있을까?

아마 부러워 보이는 사람들도 각자 삶에서는 비극을 곱씹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노인을 위한 나라도 없고

유학생의 정신적 평안을 헤치지 않을 그런 나라 역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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