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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라테스 Apr 15. 2024

행복은 결승점이 아니다

달리기가 제일 싫었던 사람이 마라톤 대회에 나간 이야기

1.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에 책상에 앉아 있으면 배 한쪽이 쿡쿡 찔러대듯 아팠습니다.

그냥 소화가 안되나 보다 넘겼던 그 증상은 꽤나 자주 나타났고 

그러다 문득 요즘 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울을 보니 살도 어느새 많이 찐 것 같고

예전에 없던 통증도 생기고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더 견대기가 힘들어서 예전에 비해 건강하지 못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저 자신을 돌아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겠다"였습니다.

 밤 8시가 넘어서 당장 밖으로 나갔습니다.

예전에 깔아놓고 오랫동안 쓰지 않던 '나이키 런'이라는 앱을 켜고

무작정 걸었습니다.

이 날, 밖으로 나갔던 그 한걸음이 저에게는 시작이었습니다.


2. 그 뒤로도 저녁을 먹고 밤이 되면 밖에서 산책을 했습니다. 

선선한 밤공기와 함께 노래를 들으며 걷다 보면 상쾌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걷다가 갑자기 뛰고 싶어 졌습니다.

참고로 저는 예전에 운동을 한창 할 때에도 절대 유산소는 하지 않았습니다.

달리기는 그냥 좋아하는 구기종목 하면서 저절로 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제가 뛰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그냥 막 뛰다 보면 가슴에 있는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잡념이 좀 사라지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막상 500M 뛰기도 참으로 힘들더군요.

하지만 집에 들어오면서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슴 한편에 피어올랐습니다.

그렇게 걷기만 하던 저는 걷고 뛰고를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3.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니 신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발이 길이뿐 아니라 발볼의 넓이가 다양하게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왕발인 저는 290에 4E의 가장 넓은 발볼의 신발을 사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맘때부터 어느덧 걷기보다 뛰는 시간을 늘려갔고 처음으로 3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30분을 뛰니까 딱 4KM 정도를 뛸 수 있더군요.

처음 30분을 뛰니 나의 한계를 넘었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그 기쁨을 양분 삼아서 30분을 뛰고, 

그렇게 뛰다 보니 30분에 5KM를 뛰는 속도가 되었고

40분을 뛰고

8KM를 뛰다가

처음으로 10KM를 뛰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10KM를 뛰었을 때의 그 쾌감을 잊지 못합니다.

비록 63분 정도가 걸렸고

뛰고 나서 하루종일 너무나 피곤했지만

너무나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해서

친구들은 한국에서

그리고 저는 독일에서 마라톤 대회에 참가신청을 하게 됩니다.

물론 풀코스는 아니고 10KM를 등록했습니다.


4. 달리기는 우리네 삶과 닮아 있습니다.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힘듭니다.

무리하면 꼭 부상이 찾아옵니다.

부상이 낫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가 중요하지만 결국 제대로 휴식을 해줘야 나을 수 있습니다.

기록에 집착하면 즐겁던 달리기도 괴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하면 결국 어느새 목표에 다다라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5. 그리고 저는 오늘 처음으로 대회에 나갔습니다.

처음 2KM는 전략대로 코로만 호흡하며 천천히 달렸는데

병목현상 때문에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달려서 그런지 심박이 너무 급격하게 올라갔습니다.

날씨도 더워서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물을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4KM 정도 갔을 때 물을 안 마시면 안 될 것 같아 마시다가 코로 물을 마시고 리듬만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더군요.

각자의 사연과 삶이 있는 사람들이 묵묵히 자신의 레이스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니

저도 그냥 달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렇게 너무도 힘들었던 6KM, 8KM 지점이 지나고

시내로 진입하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해 주고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마지막에 생각만큼의 스퍼트를 하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하이파이브도 하면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6. 3KM는커녕 헥헥거려서 1KM도 제대로 뛰지 못했던 제가 약 네 달의 시간이 흐른 후 10KM를 한 시간 내에 들어올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는 기록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삶에 힘이 될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어도 이 악물고 뛰면 결승점에 도달하듯이

저 역시 삶에서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7. 하지만 결과보다,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제 자신의 행복입니다.

행복은 결승점이 아닙니다.

어떤 정해진 목표여서 그 지점을 통과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 아닙니다.

장미에게 바친 시간이 그 장미를 소중하게 하듯이

즐거웠던 시간 괴로웠던 시간, 그리고 그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나의 모든 노력이

다 내 삶의 행복을 구성하는 것이니까요. 

내 삶의 한 페이지를 담당하게 된 달리기.

몸 건강히 달리기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년엔 하프 마라톤을 도전해 볼까?'

라고 달리기를 제일 싫어하던 사람이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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