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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라테스 Aug 18. 2024

애니메이션 보다가 펑펑 울 줄은 몰랐는데요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이 흐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 년이 지나가고

그렇게 아직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내 논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별에 별 걱정들이 나를 잠식해 간다.

'시간 내에 끝낼 수는 있을까?'

'이걸 끝낸다고 해도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이대로 늙기만 하다가 논문을 완성 못하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끝없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면서

마치 시간 내에 빠져나가지 못하면 좁아지는 벽 사이에서 깔려 죽고 마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인생을 건 타임어택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삶이 언제나 괴로울 수는 없으니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계속 만들어주어야 한다.

달리기도

친구를 만나는 것도

말판게임을 하는 것도

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한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인사이드 아웃 II를 예매했다.

나름 큰 극장에 가고 싶어서, 그리고 더빙이 아니라 오리지널 버전을 보고 싶어서

기차를 타고 옆동네에 있는 롯데시네마나 CGV정도 되는 극장으로 들어갔다.

평일 낮이었지만 생각보다는 사람이 많았다.

'다들 이렇게 뭐라도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어로 된 영화라 그런지 외국인 유학생들도 많이 온 것 같은데

대부분 혼자 온 것을 보니 또 동병상련의 마음에 괜히 짠-한 마음이 되었다.


영화가 시작했고 사실 첫 부분은 별 생각이 없이 봤다.

예고도 보지 않고 가서 예전에 한국에서 봤던 1편에 안 나오던 새로운 감정들이 나오는지도 몰랐다. 

오랜 학업으로 집중력이 고장 난 나에게 

요즘 영화치고는 짧은 러닝타임이 매력적이었기에 

그냥 시간이나 때우고 가자는 생각이었지 영화에 대한 기대가 있던 건 아니었다.

내 옆에 있던 동양인은 혼자 왔는데 엄청 큰 소리로 웃으면서 보더라.

예전 같으면 조금 짜증이 났을 수도 있는데

그냥 혼자 영화 보러 온 유학생 같아서

'이렇게라도 웃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니'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가 되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 안보신분은 주의 바랍니다)

주인공 라일리가 어떤 실수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부분에서 머릿속에 있는 Anxiety란 감정이 

패닉상태가 된 모습이 나왔다.

타인의 말이나 밖의 상황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고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덜덜 떠는 모습.

그 모습이 내 모습 같아서 갑자기 울컥했다.

'아, 타인이 내 모습을 보면 저렇게 보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였을까? 

이 부분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내 옆에서 깔깔 거리며 웃던 그 학생도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 장면에서는 그래도 잘 버텨냈는데 

그다음 장면에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분명히 눈물을 참으려고 하는데 

꺼이꺼이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눈에서 막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눈물이 났던 장면은

이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가 끝나고 난 뒤의 장면이었다.

그렇게 패닉상태에서 불안에 떨던 Anxiety가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쉬는데

이 장면을 보니 눈물이 주룩주룩 나더라.

내 머릿속에는 그 장면에서 이 생각만 떠올랐다.

'아, 저렇게 괴로워하다가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마음이 평온하게 쉴 수 있는 때가 오는구나'

절대로 끝날 것 같지 않은 괴로운 나날들

즐기려 해도 즐기기 쉽지 않고

잘하고 싶은데 나아가는 것 같지 않고 제자리걸음 같고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새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나는 평생 이렇게 살다 죽으면 어쩌지?

라는 그 불안함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 같은 그 장면에서

가지고 있던 불안함이 녹아내리면서

안도감에 그렇게 눈물이 흘러내렸던 것 같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밥을 먹으러 가서도 진정이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감정의 동요였지만

괴롭거나 슬퍼서가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 박혀서 상처를 파고들던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녹아서 생기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덕분이었기 때문에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짙은 안개가 껴도

언젠가는 걷히듯이

지금의 괴로움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며 나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 흐름에서 나는 그저 하루를 감사하며

언제나 그렇듯이 불안함 속에서

하지만 용기를 내어

그 사소하지만 대단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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