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아파트의 화분들
1. 상품화되는, 도시의 엄격한 땅
도시의 땅은 엄격하다. 수많은 땅들에는 용도가 정해져 있고, 언제든 상품화될 수 있다. 그렇기에 돈을 내고 빌려 쓴 땅은 정해진 목적을 넘어서서 쓸 수 없다. 예컨대 내가 아파트 1층에 산다고 해서, 조금만 땅을 파면 흙바닥이 나온다고 해서, 방바닥을 파서 식물을 심을 수는 없다. 이런 가정들에 대해 “그러면 당연히 쫓겨나지!”라는 반응이 주저 없이 나올 만큼, 도시의 땅이 상품화될 때에는, 그 용도는 굉장히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다. 그 엄격함은 사고 파는 관계를 통해서든, 도시를 관리하는 법과 제도를 통해서든 엄격하게 적용되고 유지된다.
2. 엄격함을 비껴나가는 화분
화분은 종종 그 엄격함을 비껴나간다. 거리를 지나면서 화분을 볼 일이 있다면, 그리 오랜 시간이나 들이지 않고도 화분이 얼마나 그 규칙들을 자유자재로 “비껴나가는”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집 앞의 화분에는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들이 자란다(예: 봄이면 철쭉을 키우고, 가을이면 국화를 키우는 집들이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집에서는 열매를 맺는 식물들을 화분에 키운다(예: 어떤 집은 블루베리를, 어떤 집은 망고를, 또 어떤 집은 무화과를 키운다.). 그런가 하면 일용할 양식을 키우는 텃밭처럼 화분을 가꾸는 경우도 있다. 토마토, 고추, 상추, 케일, 가지 등등 식물의 종류만 해도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이들 화분은 단독주택의 경우 담장 안쪽의 사유지에 놓여 있기도 하지만, 골목길에서는 바깥에 놓이기도 한다. 화분이 단조로운 주택가에서 시선을 압도하고 사로잡는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같은 주택가 안에서도 여러 집 앞에 놓인 화분들이 그 집 주인의 섬세함과 미적 감각을 말 없이 뽐내는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 앞에 이웃이 모이고, 때로는 화분에서 자란 작물들을 이웃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분명 도로나 오픈스페이스(공공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화분을 통해 공간의 원래 기능은 다른 방향으로 재구성된다. 얼마든지 옮길 수 있는 물건이니, 건축물처럼 쉽게 제약을 받지도 않는다. 옮길 수 있는 정원, 옮길 수 있는 텃밭으로서의 화분은 이렇듯 소유가 분명하고 규칙이 엄격한 도시 속 토지의 냉혹한 질서 틈을 미끄러지듯이 비껴나간다.
3. 아파트의 화분
화분은 아파트에도 존재한다. 심지어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도 화분은 존재한다. 얼마 전 올림픽선수기자촌 아파트(이하 ‘올림픽아파트’)을 걷다가 나는 아주 흥미로운 화분들을 보았다. 어떤 화분은 아파트 건물 내부로 진입하는 앞마당에 줄지어 놓여 있었고, 어떤 화분은 입구 바로 옆에 있었으며, 또 어떤 화분은 옮길 수 있는 형태가 아닌, 콘크리트 벽돌을 쌓아 만든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공동 생활 공간인 아파트에 이런 화분들이 있어도 되는 것일까?
‘88 서울 올림픽 당시 선수촌과 기자촌으로 쓰이던 올림픽아파트는, 행사 종료 이후, 시민들에게 분양되었다. 이 때, 1층 거주자들에게는 개인 정원처럼 조경 공간을 일부 가꿀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그래서 다녀보면 집집마다 서로 다른 디자인의 펜스를 치기도 하고, 심어둔 식물도 조금씩 다르며, 장독대가 있는 집도 있다. 덩굴식물이나 관목 등으로 가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가볍게 지나가도 그 집의 개성이 정원을 통해 읽힌다.
그런데 아파트를 답사하며 보니, 이 정원에 대한 권리는, 한편으로는 1층의 생활 환경 문제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제공된 것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층에 사는 거주자들과의 갈등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층 주민들과 같은 형태의 지속가능하고 고정된 정원을 보유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정원을 가꾸고 싶은 주민들이 더러 이렇게 1층 마당에 화분을 두거나 조성해 식물을 가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공공공간이지만 언제든 문제가 되면 도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니, 책임 소재로부터 가볍기도 하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공공공간의 쓰임새를 바꾸면서 식물을 매개로 사람들과 만날 수도 있다. 1층 거주자의 정원이 사적인 공간이라면, 1층 바깥 공간으로 화분을 내어놓거나, 여기에 화분을 조성한 주민들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기묘한 경계선 사이에 있다.
아파트 마당의 화분은 언제 ‘공공공간’으로서의 성격에 의해 쫓겨나, 각 주인의 집 베란다로 사라질지 알 수 없다. 다만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 사이의 긴장은 이렇듯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1층 바깥의 이 화분, 그리고 거기서 자라는 식물들은 마치 제도의 담장을 넘는 담쟁이 넝쿨과도 같다. 화분이라는 유동적인 소재가 보여주는, 규칙과 변칙 사이를 미끄러지는 생활의 모습은 매번 흥미로울 따름이다. 공간사회학자의 눈으로 볼 때, 이러한 화분들은 소유와 권리, 공간의 분할과 양도,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 속에서 아파트에서 등장하는 공간의 문법을 소리 없이 말해주는 요소이기도 하여 참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오늘도 도시를 걷다가 화분이 보이면 멈춰선다. 제도의 경계를 가만히 밀어내는 식물들, 그 옆에서 조심스레 틈을 엿보는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장소: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서울 송파구 양재대로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