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면접에 간 사회 초년생 디자이너의 '지원 동기'
내가 UI/UX,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된 건 참으로 여러가지 우연과 운명이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우리 아빠는 화가였고, 조경 디자이너였다. 외동딸인 나는 자연스레 어릴 적부터 장래희망을 화가로, 디자이너로 적어서 내곤 했다. 나는 나의 길에 의심이 없었고, 당연하게 입시 미술을 했다. 미대에 들어가 시각 디자인과를 전공하기까지 파죽지세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 후, 진짜 나의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 그 때가 되어서야 나는 조금 머뭇거렸다.
이제는 '화가'나 '디자이너'처럼 뭉뚱그린 장래희망이 아닌 어떤 구체적인 진로를 정해야만 했다. 디자이너라면 편집 디자이너가 될 건지, 캐릭터 디자이너가 될 건지, 웹 디자이너든 패키지 디자이너든 3D 그래픽 디자이너든.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하나의 직업을 선택해야 했다.
그 당시엔 아직 UI/UX라는 용어가 없었고, 이제 막 스마트폰이 보급되던 시기라 앱 디자인이라는 분야도 없었다. 아니, 어딘가에선 이미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몰랐다.
그러던 차에 대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 애가 입사한 곳은 한창 화두가 되는 소셜커머스 중 한 곳이었다. 지금이야 온갖 물건을 빠른 배송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그 땐 주로 지역 별 쿠폰을 판매하고 있었다. '소셜커머스'라는 이름도 생소한 그 곳에서 친구는 상품 상세 페이지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자기 회사에 오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회사는, 그러니까 나의 진로는 소셜커머스 회사의 상세 페이지 디자이너가 되어버렸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내 진로는 그렇게 친구를 따라 덜컥 결정되었다. 그 당시 친구네 회사는 집에서 꽤 먼 곳이라 나는 그 회사가 아닌 다른 소셜커머스 회사에 들어가긴 했지만.
나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가 아닌 디자이너로서 생애 첫 면접을 보던 그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기껏해야 서른 초반, 혹은 20대 후반의 남녀가 나의 첫 면접관이었고, 나는 이제 막 대학을 갓 졸업한 따끈따끈한 스물 네 살이었다.
면접관 중 남자 분이 물었다. 면접은 다대다 형식이었다. 나는 세 명의 인터뷰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었다. 내 옆에 있는 똘똘해보이는 분이 곧장 대답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본인의 커리어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뉘앙스의 매우 교과서적인 답변이었고, 두 번째 사람도 비슷한 결로 대답했다.
그리고 내 차례였다. 지원동기는 너무나 기본적인 면접 필수 질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매사에 언제나 느리고 어리바리한 나는 그런 기본적인 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딱 두 가지 뿐이었다. 친구가 소셜커머스 회사에 다녀서 나도 다니고 싶어서, 그리고 사진으로 본 이 회사의 사무 공간이 예뻐서.
사실 초년생들이 어느 회사에 입사를 지원하는 이유가 달리 뭐가 있을까. 그저 돈을 벌고자, 나도 이제 부모님에게서 독립하고 한 사람의 직장인이 되고자 취직을 하려는 거지, 누가 그 어떤 구체적이고 독창적인 이유를 가지고 그 회사에 입사를 희망하겠는가. 오로지 그 회사만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여기 안되면 다른 곳에 또 쓸 거 걸랑요.
하지만 어쨌든 뭐라도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동공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다. 앞서 대답한 두 사람이 너무나 모범적이고 똑 부러져서 더욱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봤는데 사무실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입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대답에 면접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여자 면접관 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 다행이다. 통했다. 트렌디하고 캐주얼한 회사라 다행이지, 여기가 보수적인 기업이었다면 곧바로 "탈락!"을 외치고도 남을 무성의하고 어리바리한 대답이었다.
"하하, 그래요. 커리어 발전이나 우리 회사의 미래를 보고 입사 지원할 수도 있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사무실이 예뻐서'도 이유가 될 수 있겠죠. 혹시 어디에 나온 어떤 사진을 보신 건가요?"
웃어주신데다 나의 대답을 받아들여 주셨다는 사실에 기쁜 나머지, 나는 더욱 발랄하고 편하게 대답해버렸다.
"회사 블로그에서요. 테이블도 막 나무로 되어있고, 냉장고도 있고, 음료와 간식이 든 찬장도 있더라고요. 그 사진들을 보면서 저도 여기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에 굉장히 설레었어요."
아마도 스물 네 살, 사회 초년생이기에 대답할 수 있고 또 그것이 통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혹은 적절한 모범 답안은 준비하지 못해도 회사 블로그까지 찾아 본 집요함 덕분이었을까.
(왜 나는 회사 블로그까지 찾아봤으면서 '지원동기'같은 필수 질문은 예상 못했을까.)
신기하게도 훗날 나는 세 명 중 홀로 합격 연락을 받게 되었다.
어쨌든 나의 진로는 웹디자이너로, 그러니까 소셜커머스의 상세페이지 디자이너로 첫 단추를 채우게 되었다.
당시 나의 첫 연봉은 1,800만원. 세금을 떼고 약 130만원 돈이 처음 통장에 입금되던 날, 내가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이 만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사무실이 예뻐서.
다소 패기 있는 허무맹랑한 대답이었지만, 물론 입사하게 된 이유가 그 대답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나의 처음은 그랬다. 친구를 따라, 집에서 가까워서, 사무실이 예뻐서 결정한 나의 첫 회사. 거창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하다 못해 볼품 없는 시작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첫 시작의 기억을 아직도 생생하게, 그리고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덕분에 커리어를 쭉 쌓아와 지금까지 먹고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