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Feb 07. 2024

영화 <환상의 빛> 그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어

             그 생각만 하면 견딜 수가 없어


              영화, 그리고 소설 <환상의 빛>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을 마주할 때 인간은 절망한다. 존재가 부재로 바뀔 때 남은 자들은 슬픔에 비틀거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편 데뷔작 <환상의 빛> 은 갑작스러운 남편의 자살로 홀로 남겨진 유미코의 이야기다. 영화의 원작은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의 소설이다. 영화가 담백한 수묵화라면 소설은 한 편의 간절한 시다. 죽은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는 소설은 수취인이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데서, 아내의 간절한 질문에 남편은 어떤 답도 줄 수 없다는 데서 애잔하고 쓸쓸하다.


흑백의 화면 속에 남편을 잃은 아내, 유미코의 상실감과 그 ‘이유 없음’으로 고통받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는 어린 유미코가 할머니를 쫓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집을 나가자 유미코가 이를 만류하지만, 고향집으로 가겠다는 말을 남긴 채 할머니는 사라진다. 이 사건은 유미코에게 큰 죄책감으로 남는다.





성인이 된 유미코는 소꿉친구인 이쿠오와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낳고 소소한 행복을 일구며 살아간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우산을 챙겨 나간 이쿠오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졸면서 기다리던 유미코는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깬다. 현관 밖에는 경찰관이 서 있다. 열차가 와도 피하지 않았다는 기관사의 증언으로 남편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미코는 울지 않는다. 어떤 것으로도 메워질 것 같지 않은 커다란 구멍이 그녀 안에서 자라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타미오와 재혼을 하고 바닷가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꾸린다. 타미오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과 유미코의 아들, 그리고 시아버지까지 다섯 식구가 함께 일상을 나누는 새로운 가족이 된다. 상처를 안고 낯선 곳에 정착한 그녀를 위해 시아버지와 남편은 조용한 배려로 유미코를 받아들인다, 남매를 돌보며 소소한 행복 속으로 돌아오지만 시시 때때로 찾아오는 이쿠오의 죽음에서 쉽게 놓여나지 못한다. 설거지를 할 때도, 타미오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속에서도 이쿠오의 죽음이 그녀를 문득문득 찾아온다. 오래된 목조주택의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묵묵히 계단을 걸레질하는 그녀의 어깨가 애처롭다. 상처를 꽁꽁 싸맨 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유미코의 마른 등은 안쓰럽다.





어느 날 집을 나와 정처 없이 헤매던 그녀는 누군가의 장례 행렬을 발견한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행렬과 조금 떨어져서 따라가는 유미코. 하얀 눈발이 내리는 해변에서 펼쳐진 생의 마지막 인사. 장례 행렬이 떠나고 바닷가에 홀로 남겨진 그녀 옆으로 타미오가 다가온다.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나, 정말 모르겠어. 왜 그 남자는 자살을 했을까· 왜 철로를 걸어갔을까· 그 생각만 하면 견딜 수가 없어."

"바다가 부르는 것 같았대. 아버지가 전에 배를 탔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빛이 보였대. 반짝반짝 빛나면서 아버지를 끌어당겼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닐까·"


어떤 불행은 기어코 일어나고야 만다는 사실을 타미오는 알고 있었던 걸까. 그저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 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유미코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걸까. 통곡하고 울부짖지 않는다고 슬픔의 무게가 가볍다 말할 수 없다. 소리치고 흐느끼지 않음으로써 남은 자의 신음은 오히려 생생하다. 울음이 되지 못한 슬픔은 유미코의 안으로 스며들어 먹물이 번지듯 그녀 안에서 퍼져나간다.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 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피를 나눈 자의 애원하는 소리에도 절대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구나.” -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바다 출판사. 2014)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그녀는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납득할 수 없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간절하게 질문한다. 하지만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저 죽고 싶어서 삶의 종착역을 향해 뛰어들 수도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진실만이 그녀 앞에 당도한다. 끝내 이쿠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유미코도 시간이 흐르면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이해할 수 없어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그녀는 생의 심연에 조금은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은 죽음 그 자체보다 남겨진 자들에게로 향한다.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자의 아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이어가야 하는 막막함에 대하여. 흔들림 없는 정갈한 화면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단아하다. 영화는 여백으로 오히려 충만하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삶의 명암을 암시하는 연출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





어디선가 한 존재가 태어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또 어디에서는 한 존재의 소멸이 일어나고 있다. 영화는 터널 속 어둠과 터널 바깥의 빛이 공존하듯 삶과 죽음은 지척에 있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불쑥 틈입하는 불행 앞에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고 가차 없는 삶 속에서 누구든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겸허하게 한다.


삶은 모호한 안개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절히 질문할 때만이 흐린 빛이나마 보여주는 건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