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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Apr 08. 2024

<집안의 천사 죽이기>(1)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좀처럼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허구적인 존재라는 것이 그녀를 도왔지요. 유령을 죽이기란 실재하는 존재를 죽이기보다 훨씬 어려우니까요. 그녀는 내가 쫓아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기어 나왔습니다. 결국은 그녀를 죽여 버렸다고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질긴 싸움이었고 차라리 그리스어 문법을 배우든지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데 썼더라면 좋았을 만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경험, 그 시절의 모든 여성 작가에게 닥칠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집 안의 천사>를 죽이는 것은 여성 작가가 해내야 할 일의 일부였습니다.(p.16)  








—> 실체보다 더 무서운 게 유령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잡을 수 없고 그래서 더 막막하다. 시도 때도 없이 출현하는 ‘그녀’, 유령의 존재는 여성의 삶을 얽매는 포승줄이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순종적인  여성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가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해야 했다. 하지만 정작 여자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집안의 천사 역할을 한쪽 성에게만 강제한 결과 여성은 부당한 의무와 과도한 짐을 지게 되었다. 오랜 세월 사회문화적 압력 속에서 순종하고 헌신하는 천사의 역할을 강요받은 여성은 이제 스스로도 그 짐을 내려놓지 못한다. 생각 자체만으로 죄책감이 들면서 스스로에게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댄다. 하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야 했다고 울프는 말한다. 표현의 자유와 도덕적 윤리적 틀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집 안의 천사’는 여성 스스로가 가장 먼저 죽여야 하는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오랜 기간 유전자에 각인된 사회의 압력과 남성중심 사회의 욕망을 제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울프는 말하고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손쉽게 관찰되지 않으며, 그녀들의 삶은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훨씬 덜 검토되고 검증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하루에서는 이렇다 하게 남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요리한 음식은 먹어 없어졌고 키워 놓은 자식들을 세상 밖으로 나가 버렸다. 어디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 소설가가 포착할 만한 두드러진 점은 무엇인가? 말하기 어렵다. 그녀의 삶은 극도로 곤혹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익명성을 지닌다. 처음으로 이 미답의 영역이 소설에서 탐사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동시에 여성도 직업의 문호 개방에 따라 자신의 정신과 습관에 일어난 변화들을 기록해야만 한다. 여성은 어떻게 자신들의 삶이 더 이상 지하로 숨어들지 않게 되었는지 관찰해야 하며, 자신들의 외부 세계로 노출됨에 따라 어떤 새로운 색깔과 음영들이 보이는지 발견해야 한다 .(P. 59)  








---> 아니 에르노의 <사건>은 그녀가 젊은 시절 겪었던 낙태의 기록이고 이 작품은 오드리 디완 감독의 손을 거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60년의 프랑스는 낙태가 불법이었기에 대학생이었던 에르노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아이를 낳게 되면 미혼모가 되어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고 낙태를 하면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결국 낙태를 선택한다. 위험천만한 불법 시술을 통해 낙태를 감행한 그녀는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이 날의 ‘사건’은 그녀의 뇌리에 뚜렷하게 남았고 작가가 된 에르노는 젊은 날의 ‘사건’을 기록한다. 그녀의 기록 덕분에 독자들은 에르노의 삶이 던지는 화두를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의 삶이 더이상 음지로 숨어들지 않도록 기록하고 드러냄으로써 여성서사를 새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울프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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