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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초이 Mar 05. 2022

연아와 간장떡볶이

 소울푸드라는게 뭔데요


 엄마 미안. 내가 어릴적 먹어본 가장 인상적인 음식은 엄마가 해준 밥이 아니야. 


 연아는 내가 국민학교 2학년 11월 분당으로 이사를 와서 사귀게 된 첫 친구였다. 애교살이 두툼해서 항상 웃는 듯한 얼굴에, 까무잡잡한 피부, 잔뜩 뿌려진 주근깨,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동그랗고 큰 콧망울을 가진 연아는 울고 있을 때에도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귀여운 아이였다. 밝았고, 잘 웃었고, 잘 울었고, 말이 많았고, 장난기로 가득 찬 인기가 많은 친구였다. 


 나는 연아와 정 반대의 아이였다. 난 허옇고, 눈은 가로로 길고, 코는 있는지 없는지 싶을 정도로 낮고, 입은 답답하게 작았다. 헝클어진 반곱슬의 머리카락을 정수리까지 바싹 모아 묶은 나의 인상은 흐릿함 그 자체였을 거다. 내향적인 성격에 늘 긴장모드였고 표정을 짓는 것도 어색했다. 웃지도, 울지도 않고, 그 와중에 착한아이 콤플렉스는 만렙이어서 선생님과의 관계는 완벽했다. 


 그랬던 나에게 연아는 정말 매웠다. 달았고, 짰다. 그 해 겨울 연아는 나를 내천에 빠트렸다. 얼음깨기 놀이를 하자며 나를 끌고 가더니 갑자기 얼음이 깨지며 내가 어깨까지 빠지자 소리를 지르면서 지나가던 다른 친구를 불러 ‘TV에서 구조하는 방법을 봤다’며 강강술래하듯 손에 손을 잡고 물에 빠진 나를 구해주었다. 


 온 몸에서 물비린내가 났다. 연아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내가 혼날까봐 우리 엄마에게 거짓말도 해줬다. 놀다가 그런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다가 빠진거라고 말이다. 


 연아는 내가 엄마와 선생님의 눈치를 보느라 못하는 것들을 전부 했다. 자기가 입고 싶은대로 옷을 입었다. 맘에 안들면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 연예인을 티나게 좋아했다. 3학년 내 생일에 연아는 나에게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이 담긴 테이프를 선물로 주었다. 그 다음 해에는 자우림 CD를 선물해서 나를 자우림의 세계로 이끌었다. 나는 영원히 연아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연아가 되고 싶었다.  


 연아가 생일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12월 26일, 생일 날짜도 완벽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외향의 조각들을 전부 모아서 노래를 불러줬다. 율동도 곁들였다. 지금 생각해도 수치사 할 것 같은데 그 날 끝까지 토하지 않고 노래한 게 참 신기하다.   


 그날 연아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오늘 글의 주인공, 간장 떡볶이다. 말랑말랑하고 쫄깃하고 따끈한 밀떡을 짭쪼름하고 달달한 간장 불고기 양념에 볶아내는 떡볶이. 입에 넣는 순간 미끄덩하고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마성의 맛. 한입은 포크로 찍어 먹고, 두 입은 숟가락으로 세 개를 한번에 입에 꽉 차게 먹고, 입가에 묻은 양념을 핥아먹기가 무섭게 다시 손이 가는 이 음식은 달고 짜고 느끼한 연아 그 자체였다. 허연 강릉 순두부 같은 나에게는 마약보다 더 중독적인 그 맛이 너무나 그립다. 보고싶다. 


 연아가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멀어졌다. 나는 여전히 싱겁고, 그래서 용기가 없어서 먼저 연락도 못한 채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상하게도 다시 만나고 싶은가 하면 물음표다. 내 마음속에 남겨진 그 모습 그대로 그녀를 기억하고 싶다. 죽어서 천국에서 만나고 싶다. 


 천국에서 만나고 싶다고 쓰다보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연아가 이렇게 나에게 특별했는지, 간장떡볶이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그러면서도 왜 한번도 엄마에게 간장떡볶이를 해달라고 말하지 못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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