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하루키의 삶과 철학
글이라는 것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누구나 잘 쓰지는 못하는 영역이다. 몇 십년을 글쓰기로 살아온 하루키 역시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 하기는 힘들다고 책에고 언급한다. 책 속에는 글쓰기보다는 소설가에 대해 언급하는 그만의 철학이 담겼다.
이 책을 읽으며 하루키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그의 문체가 지극히 일본적이라 생각했다. 짧은 호흡, 사소한 일상에 대한 담론, 무미건조한 대화까지. 그러나 그의 에세이를 읽다보니 앞서 말한 것들이 하루키만의 문체였던 거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글이 너무 번역체 같다고 많은 비평가들의 뭇매를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의 삶 또한 엄청 규칙적이다. 책 읽고, 번역하고, 운동하고. 그러다 글을 쓰고 싶을 때 글을 쓴다. 어쩌면 특별하지 않는 그의 삶이 오히려 그의 관찰력을 증가시키고, 오랜 시간 글을 쓸 수 있는 체력을 만든게 아닐까 한다.
그는 글쓰기에 대해서 말하기에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아 자신이 그나마 잘 알고 있는 소설가에 대해 말하겠다며 이 책을 시작했다. 책의 첫 번째 챕터는 '소설가는 누가 되는가'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소설가는 그 어떤 직업보다 진입 장벽이 낮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슨 소리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소설가인 분들은 신춘문예나 다른 문예지에서 상을 받은 분들이다. 그러나 사실 그건 상이지 자격은 아니다. 내가 소설을 내고 싶으면 글을 써서, 책을 내면 된다. 요즘에는 전자 출판이라는 것도 있기에 예전에 비해 책을 내기가 더 쉬워졌다.
책을 출판한 몇몇 중에는 아주 뛰어난 작품을 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소설가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어쩌다가 책을 내고, 그 책이 잘 팔렸다고 해도 더 이상의 책을 내지 않으면 그는 소설가라 하기 힘들다. 소설가는 꾸준히 책을 써 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소설가의 재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 아닐까 한다.
우연히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은 하루키는 그 이후 몇 십년 동안 글을 출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통해 우리 삶에 '지속성'이라는 화두를 던지는게 아닌가 한다.
하루키의 이번 책을 읽다보면, 그가 의외로 상을 많이 못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벨상 역시 계속 언급은 되지만 못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그는 조금 상에 대한 미련을 버린 듯하다. 일본 내 어떤 비판가가 그에게 상 받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해도, 그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묵묵히 자기가 해나갈 것을 해나가는 느낌이다. 책에서 인용된 그의 삶을 보면 답답하리 만큼 규칙적이고 우직하다. 하지만 그의 행동과는 별도로 그는 많은 생각을 머리에 넣어 다니는 듯하다.
그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얻게되는 소제를 머리에 하나하나 넣어 놓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캐비닛에 넣어두는 것처럼. 그러다 캐비닛이 다 찼다 싶으면 그는 의자에 앉아 소설을 쓴다. 재수 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글의 소재가 안 떠오를 때가 없다고 한다. 소재가 안 떠오르면 안 쓰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굳이 종이나 노트에 아이디어를 적어 놓지는 않는다고 한다. 머리에 안 떠오르면 그것은 내 소재가 아니라고 생각해버린다는 거다. 그의 이런 해탈적인 태도가 책을 읽는 내내 부럽다고 느껴졌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나는 구절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처음 그가 글을 쓸 때다.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 초고를 썼는데, 글이 너무나 엉망이고 안 읽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 글을 영어로 바꾸고 다시 일본어로 바꿨다고 한다. 그러자 이상하게 안 읽히던 부분이 간결해졌고, 의미 전달도 분명해졌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장편 소설을 쓸 때이다. 그는 장편 소설 작업에 들어가게 되면 무조건 정해진 시간동안 글을 쓴다고 한다. 그 글이 잘 써도 혹은 글이 안 써져도. 그는 그것을 습관화하듯 천천히 자기 몸에 베겨 넣는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운동을 간다. 1시간 동안 쌓여 있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리고 다시 소설을 쓸 수 있는 체력을 지닌 몸을 만드는 거다. 이런 그의 태도와 자세가 이 책에서 기억 되는 두 번째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이야기꾼, 작가를 들여다 보는 일이 아닐까? 타고난 이야기꾼인 하루키는 그의 소설만큼 스펙타클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삶 여기저기에서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이 조금씩 엿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노르웨이 숲'과 '1Q84'의 묵묵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글쓴이(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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