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식물을 올해 처음 사서 키우고 있다. 나무는 좋아하지만 키우는 식물은 관심 밖이었고, 선물 받아도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무엇보다 뭔가를 돌보는 데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고, 금방 죽일 것 같았다. 식물을 키우는 지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니, 역시나, 미심쩍다는 듯 아주 작은 화분부터 시작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마음이 바뀐 건, 이제 자주 이사 다니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주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기니 뭔가를 돌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꽃집에 가서 꽃집 사장님에게 이것저것 적극적으로 물어봤다. 햇빛만이 아니라 통풍도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식물에 둘러싸여 식물에 대해 연상의 여성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꽤 마음이 말랑해지는 일이라는 것도.(“이 아이는 물을 좋아해요” “얘는 햇빛이 꼭 필요하진 않지만 통풍이 중요해요” 같은.)
그렇게 차례로 화분을 구입했다. 하트호야, 오렌지자스민, 그리고 (토끼 귀 모양의) 백도선.
그중 오렌지자스민은 화분 하나를 샀다가 외목대로 키우고 싶어 분갈이를 했다. 곱게 분갈이를 하지 않아 조금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예쁘게 키운답시고 목숨을 위태롭게 한 건가…. 후회를 했더랬다.
그런데 며칠 전 걱정했던 오렌지자스민이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 작은 꽃인데도, 간격을 두고도 향기가 코를 찌른다. 오랜만에 찬찬히 들여다보니 어린잎이 짙어졌고, 새잎도 많이 났다. 분갈이를 한 다른 뿌리 두 개도 시들시들 죽을 것 같더니, 다른 화분에서 잘 자라고 있다. 적은 양의 흙과 물, 바람, 그리고 햇빛. 그걸로도 족하다니. 게다가 자란다니…. (무엇보다 내가 안 죽인다니….)
안 하던 걸 해보니 새로운 걸 알게 됐다. 같은 식물이라도 어떤 화분을 쓰느냐에 따라 물 주는 간격이 다를 수 있다는 것, 흙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 흙의 수분을 가늠할 수도 있지만 눈으로 관찰해도 보이는 게 있다는 것.
물이 부족하면 가지가 축 늘어지고, 물을 주면 다음 날 늘어졌던 가지가 올라온다. 햇빛을 충분히 받으면 말 그대로 ‘쌩쌩’한 ‘기운’이 느껴진다. 말하지 않아도 기분 좋은 게 보인다. 일하다가도 식물의 존재감을 느끼고 얼굴을 마주하기도 한다.
의외라고 생각했다. 섬세함이나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데도, 뭔가를 돌보고 있다는 감각이 이전과 달리 부담스럽지 않다는 게. ‘목말라’ 같은 신호를 보내고, 내가 알아채고 있다는 게 오히려 든든한 기분이 들 정도다.
분갈이 소동 이후 깨달은 점도 있다. 나는 멍청이고, 여리여리한 식물의 뿌리는 생각보다 튼실하고, 생명력은 꽤 인내심이 있다는 것. 그런데… 편애하는 식물이 더 잘 자라는 듯하다. 얘네도 아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