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우리가 직관적으로, 혹은 그렇다고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려주는 책. 새로운 주제는 아닐 텐데, 물고기라는 주제도 그렇고, 반전의 반전이 거듭돼 마지막에 가서야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게 만드는 전개와 필력이 이 책을 신선하게 만든다.
저자가 삶의 나침반으로 삼고자 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연구한 어류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인간이 직관적으로 분류하기 쉽게 만든-종류이고, 물고기들은 사실 서로 매우 다른 동물들이다. 그리고 또 일부 물고기들은 비슷하게 생긴 다른 물고기보다 인간과 가깝다. 그러나 인간을 정점에 두고 다른 종들의 우열을 가린 조던은 인간이라는 종 안에서도 우생학에 매혹돼 이를 열심히 전파한다. 자국인 미국에서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수용하고 불임화하다 마침내 독일의 나치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는 데 원동력이 된 것은, 조던의 자신의 신념을 의심하지 않았던 태도.
확실하다고 믿는 것들, 우리의 신념이 사실은 오류일 수 있다는 회의. 이걸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의심보다 판단이 더 쉽고, 우리는 세계에 대한 매끈한 설명과 가르침, 혹은 자기중심적인 낙관을 원하니까.
그러나 회의는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쉽게 판단했던 다른 사람에 대해, 그리고 자연과 세계에 대해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게 만든다. 하찮게 보이는 박테리아가 지구에 필요한 대부분의 산소를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게 뒤늦게 밝혀지고, 내가 인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실은 나를 많이 인내해줬다는 사실을 이후에 알게 된 것처럼. 한편으로는 겸손해지고, 한편으로는 다른 가능성이 궁금해지는 과학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