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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B Nov 24. 2023

연애는 삼키고 결혼은 뱉기

전세사기 (3) - 집의 불행

불길한 꿈을 여러번에 걸쳐 꿨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본가 거실에 누워 계셔, 돌아가시기 직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에 검버섯 같은 것이 잔뜩 피어있었다. 표정도 좋지 않으셨다.

어느 날은 아랫집 사람들이 우리집에 놀러오는 꿈을 꿨다. 그러다 전셋집 문을 누군가 두드리길래 문을 열었더니 웬 여자 아이 두 명이 서 있었다. 계단에서 검은색 물이 마구 흘러내리고 있었다. 새어나오는 액체와 홀딱 젖은 두 아이의 모습에 내가 놀라 얼른 들어오라고 했다. 말하면서 순간, 어? 들어오면 안되는건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서 있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좋아하던 가족을 한 명 잃었다. 그맘때의 내가 어떤 정신으로 살고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전세 사기를 알게 된 후, 집의 불행이 계속 되었다.

2021년엔 비가 많이 내렸다. 일주일도, 이주일도 넘게 비가 내렸다. 내리던 비가 집에 스몄다. 천장에 끔찍한 흉터처럼 생긴 누수의 흔적이 생겼다. 작은 방에는 아주 크게 생겼고, 안방에도 작은방보다 작은 크기의 누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아주 지쳐있었다. 윗집과 이런 일로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랫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랫집에서 비가 새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을 마주한 나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와 베개 사이에 틀어박혀 울었다. B는 나를 다독이면서 동시에 본인이 윗집과 아랫집 다 연락하겠다고 했다. 누수업체와의 연락도 B가 했다. 그것이 나의 작은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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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쥐죽은듯 조용했던 옆집은 부부와 아이, 세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었다. 아랫집 할머니가 올라와 시끄럽다고 욕했던 것이 무색하게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 의외로 아이는 많이 울지 않았고 나도 아기 소리를 소음으로 여기지 않는지라 크게 문제될 일은 없었다.


전셋집의 벽은 아래 윗집의 소음을 전혀 막아주지 못했다. 옆집 남편이 통화하는 내용이 벽 너머로 명료하게 넘어오고는 했다. 조폭이나 양아치, 포주와 피용자... 저도 모르게 들어버린 통화 소리에 상상력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지만 나는 빠르게 기억을 털어내려고 애썼다. 별로 알고싶지 않은 정보였다.


어느 날, 한밤 중 옆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넘어왔다. 낑낑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기 소리 같기도 하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 가만 들어보니 흐느끼는 소리 같았다.

부부싸움을 하는 모양이었다. 여자가 공포에 질려 있었고, 아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남자는 음산하게 뭔가를 중얼중얼 하고... 제발 그러지 말라며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휴대전화를 꼭 쥐고 상황을 듣고 있던 순간,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창문 쪽에 몰려있던 여자도 소리를 질렀다. 놀란 나도 같이 "신고해!"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 목소리를 들은 옆집 남자가 "뭐?"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넘어왔다. 그 뭐? 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더 무서웠다.


긴박했던 상황, 어디서 어떻게 듣고 온 건지 누군가 빌라 계단을 뛰쳐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어떻게 듣고 온건지 누군가 빌라 계단을 뛰쳐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다급하게 누르고 옆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가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우는 소리가 넘어왔다. 나는 신고하려던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부여잡으려고 애썼다. 옆집 상황은 일단락 되었지만 나는 당분간 잠을 이루지 못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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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집과 옆집 모두 담배를 주구장창 피웠다. 정말 '타인은 지옥이다' 세계관에 들어와있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자주 불안에 떨었다. ASMR에 빠져들게 된 것도 이 맘때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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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자주 했다. 마치 무슨 악귀를 내쫓는 의식처럼 했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차길 바라며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빌라 건물에는 관리인이나 건물주가 없었다. 건물 관리가 끔찍하게 안 되고 있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B와 내가 팔을 걷어부치고 계단과 주차장을 청소했다. 계단 여기저기 붙어있던 거미줄을 걷어내고, 계단에 소복하게 쌓여있던 먼지를 뒤집어 쓰며 열심히 계단을 닦아냈다.

청소를 끝내고, 깨끗해진 건물을 보니 기분이 좋기는 했으나,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암묵적으로 결심했다. 그 날 이후로 우리도 건물 청소를 다시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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