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길한 꿈을 여러번에 걸쳐 꿨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본가 거실에 누워 계셔, 돌아가시기 직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에 검버섯 같은 것이 잔뜩 피어있었다. 표정도 좋지 않으셨다.
어느 날은 아랫집 사람들이 우리집에 놀러오는 꿈을 꿨다. 놀던 와중에 전셋집 문을 누군가 두드리길래 문을 열었더니 웬 여자 아이 두 명이 서 있었다. 계단에서 검은색 물이 마구 흘러내리고 있었다. 새어 나오는 액체와 홀딱 젖은 두 아이의 모습에 내가 놀라 얼른 들어오라고 했다. 말하면서 순간, 어? 들어오면 안되는건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서 있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좋아하던 가족을 한 명 잃었다. 그맘때의 내가 어떤 정신으로 살고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세 사기를 알게 된 후, 집의 불행이 계속 되었다.
2021년엔 비가 많이 내렸다. 일주일도, 이주일도 넘게 비가 내렸다. 내리던 비가 집에 스몄다. 천장에 끔찍한 흉터처럼 생긴 누수의 흔적이 생겼다. 작은 방에는 아주 크게 생겼고, 안방에도 작은방보다 작은 크기의 누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아주 지쳐있었다. 윗집과 이런 일로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랫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랫집에서 비가 새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을 마주한 나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와 베개 사이에 틀어박혀 울었다. A는 나를 다독이면서 동시에 본인이 윗집과 아랫집 다 연락하겠다고 했다. 누수업체와의 연락도 A가 했다. 그것이 나의 작은 위안이었다.
2.
첫 날 쥐죽은듯 조용했던 옆집은 부부와 아이, 세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었다. 아랫집 할머니가 올라와 시끄럽다고 욕했던 것이 무색하게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 의외로 아이는 많이 울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 울음소리는 아랫집 남자의 괴성과 표효에 비하면 소음 축에도 끼지 못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겨났다. 소음을 전혀 막아주지 못하는 벽 덕분에 옆 집 남자의 통화 내용을 들어버리게 된 것이다. 옆집 남편은 조폭이나 양아치, 아내는 남편과 일을 함께 하다 만난… 포주와 고용인의 입장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한 밤 중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뭔가 낑낑거리는 소리 같기도, 울음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베란다까지 나갔는데, 가만 들어보니 옆 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베란다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어디로 갔는지 아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자가 음산하게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제발 그러지 말라며 애원하는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상황이 심각해보여 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고, 놀란 나도 함께 소리를 질렀다. 내 목소리를 들은 남자가 뭐? 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대답이 공포를 가중시켰다.
어디서 어떻게 듣고 온건지 누군가 빌라 계단을 뛰쳐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다급하게 누르고 옆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였다. 외할머니였는지 친할머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에서 다급하게 온 할머니 덕분에 조마조마했던 옆 집의 상황이 일단락이 났다.
3.
아랫집과 옆집 모두 담배를 주구장창 피웠다. 정말 '타인은 지옥이다' 세계관에 들어와있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자주 불안에 떨었다. ASMR에 빠져들게 된 것도 이 맘때쯤이었다.
청소를 자주 했다. 마치 악귀를 내쫓는 의식처럼 했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차길 바라며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관리인이나 건물주가 없어 빌라 건물 관리가 끔찍하게 안되고 있었다. 이사온지 얼마 안 된 A와 내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계단과 주차장을 청소했다. 여기저기 붙어있던 거미줄을 걷어내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계단을 닦아냈다. 깨끗해진 건물을 보니 기분이 좋기는 했으나 건물 청소는 생각했던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우리는 한 번 하고 다시는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