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좋아하는 두 사람, 부부의 이야기. 해피엔딩일까
삼십 평생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갔다.
아 아니구나 생리통으로 지하철역에서 기절했던 20대 초반
119에 실려 산부인과를 갔다.
그 뒤로 첫 산부인과였다.
친구가 다니는 난임병원으로 간 것은 그저 우연이였다.
그리고 지금은 결론적으로 그 난임병원을 다녀야 한다.
나의 젊음과 나의 청춘이 가장 중요했다.
왜인지 아이가 생기면 청춘이 끝날 거 같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청춘을 최대한 즐기고
땅! 하면 생길 아이를 준비하기로 2024년 1월 다짐했다.
그리고 7월이 되었다.
땅 하고 생기지 않는 아이가 이상하고 신기했다.
미숙한(?) 엄마 아빠 탓인가 하여 산부인과로 향했다.
앞에 말한 친구 따라 난임병원
남편과 함께 간 난임병원은 무한 친절했고 상냥했다.
그래 난임병원이라니 얼마나 예민하고 힘들겠어 간호사 의사 선생님이
당연히 친절하셔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첫 상담 이후. 난 무서웠다.
6월 첫 산부인과를 갔다.
생리를 시작한 다음날 가야 한다고 해서
어쩌면 아이가 생겼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6월.
생리가 시작하자마자 친구와 전화하다 병원을 예약했고
병원을 갔다.
보건소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는 혜택까지 챙겨가며
첫걸음을 나섰다. 굳이 난임병원을 오셨네요? 소리를 들을 줄만 알았다.
첫날 - 산부인과 방문
생리주기를 적는 칸이 있었는 데
(생리주기란 생리가 시작한 날과 다음 생리 시작 날이다.)
26-30일이라고 한다.
아무튼 착각해서 23일이라고 말하고
"생리주기가 짧네요?"라는 한 마디에 너무 우울했다.
여러 검사를 하면서 신기하고 무서웠다.
자궁에 근종이 있었다 4개나 있었다.
우선 생리주기는 검색해 보니 착각이었다.
그래서 안심했다. 다음 예약날을 기다렸다.
두 번째 날 - 산부인과 방문
근종은 있을 수도 있으니 무서웠지만 괜찮았다.
주기가 맞으면 뭐라고 생각했다.
집안 일로 전날 새벽이 되어서 집에 도착했고 괜찮다며
몸살 날 남편을 두고 혼자 산부인과를 향했다.
검사 결과가 나왔고 추가 검사를 했다.
결과는 과히 충격적이었다. 나의 난소나이가 42살이라고 나왔다.
근데 나는 알고 보니(?) 벌써 35살이었다.
나의 청춘에 아이를 꿈꿨음에도 안일했다.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나팔관 검사를 했다.
검사 전 설명을 길게 하는 걸보고 깨달았다. 이것은 미친 아픔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검사를 하다가 소리 지르고 울고 못하겠어요를 외치다가 거의 쓰러졌다.
저혈압이다 / 눈을 감지 마라 / 조금 더 누워있다가 가도 된다 / 괜찮으신가
소리를 잔뜩 들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정신을 차린 후 휠체어를 타고 링거를 맞았다.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사실을 알리고
선생님 만나고 바로 가겠다고 택시 타고 가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집으로 갔다.
택시 안에서 조용히 소리 죽여 몇 번이나 울었다.
10분밖에 안 되는 택시 속에서 라디오가 나오지만 기사님은
나의 안부를 돌려 묻듯 날씨가 너무 덥죠 하면서 날 다독여줬다.
고마웠다.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남편은 잘 다독여주며 이리지리 물어보지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극 F인 나는 의사 선생님이 나의 난소나이를 말했을 때부터
멘붕이라 기억나는 게 없었다.
무섭다.
나는 문제가 있는 거 사람 같다.
4월인가
침실에 나와
햇살 가득한 거실로 나왔다.
너무나 따스했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집은 지금 나에게 완벽했다.
안정적이었다.
월세를 내도 일이 많이 없어도
대출금을 내고 카드값이 많아도
그냥 우리 둘이 너무 좋았다.
아 행복하구나. 이게 행복이구나.
이렇게 행복하다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