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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추추 Sep 15. 2023

외롭자

파리의 한국적 프리랜서 


파리에 온 지 1년이 좀 넘었다. 


1년은 고작 삼백밤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인데,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연락이 뜸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새로 만나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며 

프랑스 전체는 몰라도 최소한 파리 사람들의 출퇴근 군상을 파악하기에는 마침맞은 시간이다. 


프랑스인 친구를 사귀었고, 그에게 듣고 스스로도 느낀 바, 

프랑스인들은 한국인보다 외형적으로 덜 살갑다. 

깊은 속내까진 어떤지 모르겠으나 보통은 차갑다. 친절한 것과 별개로 차갑다. 

내가 만난 파리지엥&파리지엔느들은 꼭 웃기지 않는 이상, 예의상 혹은 분위기상 웃는 일이 드물다.  

살갑다는 정의 또한 굉장히 한국적이라 나는 혼자 몇 번은 몰래 삐쳤다. 

나라면 이 서툰 외국인에게 좀 더 신경쓸 것 같은데,  묻지 않는 한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일은 잘 없었다. 

대신 도움을 요청하면 가부를 정확히 알려주는 편이다. 아쌀하다 해야 할까 속정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곳에 있는 외국인들은 자국민들끼리 연대하고 결속력을 길러간다. 

나 또한 마음만 먹으면 나가서 비슷한 상황의 한국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만나보면 결코 비슷하지 않다. 각자의 환경에 따라 사람들은 세세하게 분화된다. 

그들에게는 프랑스에서 산 시간에 비례한 '생활의 익숙도'가 계급처럼 붙어있다.

오래 살았는데 불어도 잘하고 앞으로도 오래 살 예정이면 대대장, 

머물 날이 길지 않지만 이미 수많은 정보를 섭렵했고 네트워크가 빵빵하고 불어도 잘하면 중대장이다. 


나는 일병쯤 되지 않을까. 

불어도 못하고 사람들이 원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이곳에서 한국 사람과 초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만 같은 중압감이 든다. 한국인은 확실히 정말 부지런하고 정말 바쁘고 정말 똑똑하다. 

그래서, 초반에 내가 그의 인맥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꽤 괜찮은 정보를 보유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짐작컨대 그래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싹트기 시작했다. 

물론 편견일 것이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오직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문을 열어주는 인맥이란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키며 형성되기 마련이 아닐까. 


한국에서의 나는, 한달 내내 단 하루도 미팅이나 약속이 두세 개 이하인 적이 없었다. 

늘 1개를 초과했다.  

MBTI가 있기 이전에 이미 '극도의 외향형'임을 알았다. 

집에 있는 게 제일 싫고 혼자 다니는 건 더 싫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최소한의 인맥만을 꾸리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환경이 바뀐 만큼 한 번, 외로워보기로, 결정을 했달까. 

외부로 향하던 관심을 내부로 한 번 돌려보는 시간. 

너는 이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이며, 어떤 낡은 것들을 버릴 것인지 우리 여기서 한 번 얘기해보자, 하는 시간.  


파리에서 리모트 잡을 하는, 이제부터 외롭기로 결심한 노동자의 일상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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