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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이며

내가 왜 여기에서, 누군가의 등과 마주하고 있는 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by Joy Kim

3.

교회에 다니면서는, 전세계와 무역을 위해, 미국 쌍둥이 빌딩에 가장 이른 새벽에 출근해 기도했던, WTCA(세계무역센터협회) 한국인 부총재의 간증을 따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새벽을 매일 같이 살았다. (대충 다니다 말면, 교회를 다닌 게 아니니까, 열심히 기도했다.) 그리고 그 당시 최초로, 청와대가 공개채용의 형태로 사람을 뽑았고, 나는 언감생심 대학원생 신분으로 원서를 썼고, 당연히 결과는 탈락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이력서를 넣은 것을 계기로, 다시 연락이 왔고, 나는 가장 이른 새벽에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대통령의 온라인 귀를 열어드리는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불붙은 마음들이 촛불집회로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국민소통 강화를 위해 뉴미디어 비서관실이 신설되고, ‘온라인 대변인’ 제도가 청와대에 도입되면서 인력이 필요해진 것. 밤사이에 온라인에서 국민들이 어떤 문제로 주로 들떠 있었는지, 분개하고 있는지, 그것이 다시 성난 목소리가 되어 광화문을 가득 메울 지, 그 전에 대통령이 빠르게 살필 문제인지, 그 온도를 살피는 한 장짜리 보고서였다. 쌍둥이 빌딩에 가장 먼저 출근해 세계 무역을 위해 기도하던 WTCA 부총재에게서 배운, 무기계약직 직원의 기도였다. 여담이지만, 쌍둥이 빌딩이 폭파되던 날, 기도하는 부총재는 때아니게 아이스 음료를 꼭 사달라는 한 여성의 부탁으로 사먹었고, 배탈로 기차를 놓쳤고, 중요한 회의시간이 모두 미뤄졌고, 그 시각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 건물로 가는 것을 막았다. 그의 기도에서 내가 배운 것은 다름 아닌, ‘지구의식’ 이었다. 지구가 둥글고, 나는 나 한 존재로만 혼연히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10.

대학 때 연극이 하고 싶었는데, 너무 출중한 외모의 친한 친구가 연극을 해서,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 나서지 못했다. 그런 순간이 나는 이제와서 굉장히 아깝게 느껴진다. 남을 의식해서 하지 못한 일 말이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기회만 되면 일단 덤벼들게 된 것 같다.


외고를 졸업한 친구들이 가득한 대학 시절, 나는 영어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미 늦은 영어, 다른 언어 하나라도 더 알자! 싶어 졸업 직전에 갑자기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일문과 친구들, 일어를 제2외국어로 잘하는 친구들이 일본 주요대학으로 다 배정받고, 남은 곳 중에서 나는 어찌 배정을 받았다.


그 도시는 나가사키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의 두 학기의 삶이었다. 탈 아사아, 세계 열강을 꿈꾸던 일본, 그 나가사키 한복판에 떨어진 폭탄은 시간이 흘러도 그 안에 정지돼 있었다. 유한한 인간의 무한한 꿈은, 거기 불편한 몸으로 살아남은 자들에게 여전한 재앙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아시아인, 세계속 한 작은 나라에서 살아남은 온기있는 인간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대해 처음 생각했던 것 같다. 역사와 운명 안에 있는 작디 작은 나, 나는 이곳에 왜 있는가에 대해.



11.

내가 교회 예배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 했던 질문을, 최근에 탈북 여성의 간증에서 들었다. 시체 더미 속에서 감옥 생활을 견뎠고, 죽음의 위기를 골백번 넘기며,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대한민국에 왔는데, 왜 모자람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 나라 젊은이들은 1.5시간에 한명꼴로 자살을 기도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말.


그런데 지금 이 시각, 자신이 선택해서 태어난 영토가 아님에도, 그 영토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삶으로 들어갈 여지도 없이 그저 죽어가는 북한, 미얀마, 우크라이나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제 만났다고.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그 세계의 재건을 위해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많다는 것을 알고 나니, 왜 신이 이 땅을 축복하는 지도, 이해하게 됐다고.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이 땅에서도 삶의 문제로 고단함이 가득한 젊은이들이나, 우크라이나이의 총성 한가운데 떨고 있을 어린 생명들 다르지 않다는 것, 그 힘으로 자신이 살아나왔기에,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갈 날에 대해서도, 다같이 희망을 써나가야 한다고 그녀는 힘주어 말했다.



독일의 통일은 정말 도둑처럼 왔었다. 한반도의 평화는 그럼 어떨까? 갑자기 통일이 되면 강남은? 우리의 내일을 우리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그저 우리는 오늘 살아있고, 서로에게 등을 내어주며 살아내고 있다. 그러니 우리의 연결이 선한 것이 되기를, 서로를 향한 고운 눈의 이해와, 나 한사람의 선한 달려나감으로 좋은 순환의 한 모퉁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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