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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ra Kim Jan 22. 2020

때린 아이의 엄마가 되다

우리 애는 그런 애 아니에요! 남탓이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

먼저, 오늘은 아주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예쁜 운동화도 한 켤레 샀다. 속상할 땐, 그 힘을 다른 데다 쓰고나면 좀 나아진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내게 일어난 일을 글로 갈무리 해두기 위해서다. 속을 든든히 채우고,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속 따가운 일은 그냥 지나치고 싶다. 하지만 시간 지나 이 시간을 다시 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기록해 두기로 한다.


38개월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서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의 아이의 얼굴에 손을 댔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는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손에 들고있던 얇은 플라스틱 교구로 친구 이마를 쳐서, 이마에서 피가 났다고 한다. 찍힌 자국이 선명했다는 전언. 다른 두 아이도 교구로 쳤다는 데, 다행히 상처가 없었다고 한다.


언어발달이 조금 지연되어 있고, 상호작용에 관심이 없던 아이가, 최근 언어치료와 감각통합치료를 받으면서 호전반응으로, 친구들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고, 부쩍 친구들을 괴롭히는 횟수가 잦아졌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솔직한 내 마음은,


1) 친구가 먼저 우리 아이를 자극한 건 아닐까.
  (평소 무심한 성격의 아이는 위협을 느끼지 않은 한, 남을 헤치지 않는다)

2) 잘못 했으면 곧장 인정하는 편인 우리 아이가 왜 잘못을 인정 안 했다는 걸까.

3) 아이가, 어떤 식으로 자기 표현을 했을 때, 
   그 전달이 좌절되어, 무시당했다고 느껴 돌발 행동을 한 건 아닐까.

 (즉, 아이의 어떤 생각이 관철되지 않았음을 선생님이 잘 살펴주지 않은 건 아닐까)

4) 우리 아이에게 반 친구들이나 그 엄마들 사이에서 '잘 때리는 아이 라는 굴레'가 씌워지면 어쩌나.



엄마 마음이란 게 이런 것이다. 남의 집 아이가 다친 것도 크게 걱정 되지만, 우리 아이부터 살피는 마음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옹졸한 생각들이 먼저 꼬리를 물었다. 동물적 본능일 것이다. 어찌됐든, 남의 아이를 때린 건, 이유를 불문하고 잘못된 일이다. 그래서 전화기를 들고 머리를 굽신 거리며, 정말 죄송하다는 뜻을 거듭 전했다.


집에서는 주로 동생이 언니 물건을 잘 빼앗는다. 그러면 언니가 동생을 순식간에 할퀴거나 할퀴는 모양새를 하다가 멈칫하기도 한다. 재밌게 가지고 놀던 놀잇감을 갑자기 빼앗겼을 때, 첫째는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본인이 잘못한 일에는 곧장 사과한다. 특히나, 때린 행위에 대해서는 나는 반드시 미안하다는 사과를 동생 보는 앞에서 받아낸다.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이가 여전히 상호작용에 서툴고,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마음먹고 실수한 것도 아닌데, 미숙한 아이에 대해 너무 호되게 발달을 재촉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우리 애는 막무가내로 다른 애를 때리고, 침묵하는 그런 애가 아니다!



반대로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누군가의 제보였다. 물론 나는 내 눈으로 보지 않은 일이라 대충 넘어가려 했다. 그러다, 우리 아이를 때렸다는 아이가 내가 평소 알고지내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아이는 나와 그 아이의 엄마가 함께 있는 장소에서, 장난감 총으로 우리 첫째의 머리를 때리거나, 누워있는 우리 아이를 여러명이 질질 끌고 가기도 했다. (그 엄마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현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분위기가 나빠질까봐 그러지 못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 아이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 그 엄마는 2) 우리 애는 맞고 왔으면 왔지, 때릴 아이가 아니다.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4) 자기 아이의 평판이 나빠졌을 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에게 제보했던 아이 엄마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아이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 해서, 유치원에 혹시나 소문이 났을수도 있을까봐 염려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맞은 쪽인 내가 오히려 이 이슈의 시발이 된 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사실 1:1 제보로 들었기에, 그 일을 유치원 엄마들 앞에서 말한 일은 없었다. 그러니 아이의 평판이 나빠질 일은 없었다. 어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그 아이 엄마와 나는 멋쩍은 사이가 되고 말았다. 자식 문제는 이토록 예민한 이슈인 것이다. 물론 젠틀한 그 엄마는, 본인의 아이에 대해 모르던 면을 알게 됐고, 조심을 시켜야 겠다고 했지만, 그 이후 우리 아이를 불편해 하는 게 느껴졌다. 혹시나 자기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손을 댈까봐 마음이 쓰였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나도 그 당시에 조금 더 의연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러지 못했다. 현장에서 두 아이에게 직접 "때리는 건 안 돼!"하고 주지시키고, 아이들이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그 순간을 지나쳐버리고 나니, 계속 마음이 쓰였고, 이후 비슷한 일이 생기자, 더 대처할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거꾸로 이 일을 겪고 보니,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때린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그 엄마가 겪었을 마음의 소동이 나에게도 차례차례 일어났기 때문이다. 차라리 맞고 오지, 하는 마음도 들고, 우리 아이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어른들의 얼굴도 하나하나 떠올랐다.  


저녁을 먹고 두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약국에 가서, 흉터를 최소화해줄 약제품도 구매하고, 친구가 좋아할만한 과자도 사서 포장을 했다. 자정에 퇴근한 남편과 나란히 앉아, 이마에 상처를 입은 아이의 부모에게 죄송하다는 편지를 썼다. 내 마음도 이렇게 안 좋은데, 상처를 들여다 보고 있을 상대 아이의 엄마 마음은 감히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내 아이가 다른 아이로부터 맞는 걸 보았던 나는 그 마음의 무거움이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누군가를 때린 행위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누가 잘못을 했든, 때리는 건 안 된다!고 단단히 알려주어야 한다. 이제 겨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아이에게, 또박또박 말을 가르쳤다. "친구들아 미안해." "친구가 물건을 뺏아가도, 내가 먼저 가지고 놀았어. 조금만 기다려. 하고 때리지 않아요." 이렇게 여러 차례 같이 말해보았다. "제제야. 엄마는 제제가 친구들을 때리면 마음이 아파. 친구들이 제제랑 놀기 싫어! 하면 너무 속상하잖아. 그러니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자." 하니까 알아들었다는 듯이 "네! 약속!" 하며 손가락을 내민다. 하고싶은 말을 아직 다 하지는 못 하지만, 아이는 투명하다. 사진 속에서 친구 이마에 붙은 밴드를 보며, "준서야 미안해!"하며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다행히, 친구의 이마는 크게 스크레치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과 내가 보낸 편지와 마음의 선물을 그 부모님은 한사코 받지 않으려 했다고도 했다. 아이 크면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부담스러워 하며, 너그러이 용서해 주셨다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이를 보면, 마음이 싸하게 안 된 마음이 든다. "제제야 사랑해!" "엄마, 꼭 안아 주세요." "그래.이렇게 친구들도 사랑해야 해." "네!" 이제 딸과 이런 따스한 말도 주고받을 수 있게 된 데 감사함을 느낀다. 말은 잘 못해도, 실은 의사소통이 이렇게 되고 있음에 감사했다.


아이에게 처음 일어나는 격동의 상호작용 시기가 지나가나 보다. 엄마인 나부터 요동하지 않아야 하는데, 감정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다른 아이가 다쳐서는 안 되지만, 내 아이도 함꼐 다칠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자라는데 어찌 아무 일이 없겠는가. 하지만, 너무 소중한 내 아이인 만큼, 도리어 감정소모로 중요한 성장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기로 한다. 나 역시 한 번 실수로 족하다. 남 탓 하지 않기 말이다. 이번 기회로, 엄마로서 한 발짝 떨어져서 아이의 걸음마를 봐주는 관찰자 역할을 더 잘 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오늘도 엄마인 내가 먼저 한 뼘 더 자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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