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막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아, 물론 진짜 막내를 말할 때는 막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쓰지 않는 경우는 막내가 아닌데 막내라고 하는 경우다.
막내란, 보통 직장에서 '애정으로 보살펴 주는 척하면서' 실제 각종 잡심부름을 시키려고 가장 나이가 어리거나 가장 경력이 짧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 부서원들이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지 식당을 고르는 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기가 먹고 싶은 걸 고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부장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 사람들이 어제 먹지 않은 것 등등을 고려해서 골라야 한다. 그러면서 "식당은 막내가 골라주는 데로 가자"라고 말한다.
식당에 가면 숟가락 젓가락 깔고 물컵에 물 따르는 일을 해야 한다. 어떤 회사는 아예 대놓고 입사 첫날 점심에서 "이런 건 막내가 해야지"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부서의 비품을 채우는 일이나, 생일 케잌을 사 오는 일, 혹은 2차에 갈 장소를 미리 나가서 파악해 오는 일이나, 길 멀리에 보이는 저 식당에 자리가 있는지 빨리 뛰어가서 알아오는 일 같은 것들이 흔히 '막내'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일이다.
물론 많은 직장들이 위에 열거한 일을 모두 막내에게 시키는 건 아닐 거다. 더 많이 시키는 회사와 더 적게 시키는 회사가 있겠지만, 저런 일들의 일부를 시키거나 기대하거나, 아니면 저런 일들을 시키지는 않지만 적어도 '막내'라고 부르는 회사들은 많이 존재한다.
나는 물론 저런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도 않는다. 식당에 가면 항상 내가 먼저 숟가락을 깔고 물컵에 물을 따른다. 저 멀리 식당에 자리가 비어있는지 궁금하거나, 빨리 가서 자리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구성원들을 뒤로 하고 내가 먼저 뛰어가서 알아본다. 그러나 내가 가장 하지 않는 건 '막내'라고 부르는 일이다.
우선 '막내'라고 부르려면 막내를 찾아내야 한다. 누가 나이가 가장 어린 지, 혹은 누가 가장 경력이 적은 지를 알아내고 그 정보를 유포시켜야 한다. 직장에서 왜 그리 열심히 모두들 나이를 묻고 비교하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기필코 가장 어린 자를 찾아 '막내' 칭호를 붙이는 것부터 불편하다. 이것은 같이 일하는 동료를 동등한 동료로 대우하지 않고 있다는 무의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원-대리-부장 등의 위계질서가 있는 곳에서 업무의 의사 결정만 그걸로 하면 되었지, 굳이 거기서 나이를 끌어들여 또 하나의 위계질서를 만들고 그걸로 업무가 아닌 생활의 영역까지 굴림하려고 하는 저의가 엿보여서 싫다.
각자 돈을 내어 먹는 점심이라면, 업무 시간도 아닌 이상 결국 부장이나 신입이나 그냥 같은 식당의 손님이고, 숟가락은 각자 놓든지, 아님 배고픈 사람이 먼저 깔든지 하면 되지, 왜 그걸 거기서 다시 '나이 시스템'을 도입해서 막내에게 시키나?
나는 5남매의 막내로 자랐다. 늘 가족들의 따뜻한 관심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그래서 막내로서 혜택을 받는데도 익숙하다. 당연히 어렸을 때 많은 심부름을 했지만, 그런 심부름들은 대개 맨 위 형 누나에서부터 시작해서 일정한 나이가 되면 시작하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졸업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맨 마지막이었으니 아마 제일 오랫동안 했을 거고, 그다음은 제일 큰누나였을 거다. 성인이 되고 나선 뭐든지 공평하게 나누었다. 형 누나들은 언제나 막내를 보살폈지만, 의무를 부과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직장의 막내는 어떤 혜택을 누리는가? 어떤 경우는 부서에서 보살펴 주는 부분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일을 못 하게 되면 "프로 정신이 부족하다"느니 "사회생활을 모른다"느니 하는 비난을 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들 머릿속이 궁금한데, "어떻게 '막내'라고 부르면서 '프로'라는 단어를 같이 사용할 수 있는지?" 막내라고 부르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은 어리고, 부족하고... 그런 느낌 아닌가?
혜택이라는 점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불편하다. 회사에서 사다리를 타면 인턴이나 아르바이트가 2만 원이나 3만 원 등 최고 금액이 걸릴 때가 있다. 사실 그들의 급여를 생각하면 미안하긴 하다. 하지만 거기서 '당신은 인턴이니' 내지 말라느니, 혹은 상사인 내가 대신 내겠다느니.. 하는 말은 또다시 사적인 영역에 회사의 규칙을 가져온 것이다. 그렇게 배려가 하고 싶으면 서로 연봉을 까고 벌금을 연봉의 일정 %로 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안타깝지만 언제나 벌칙은 '나온 대로'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인턴'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신을 차별 대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업무를 잘 못 하면 잘 못 한대로, '막내'라고 봐줘서는 안 된다. 정확히 지적하고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어야 그 사람도 성장할 수 있다. 능력과 경험이 다른 것을 인정하되 그것이 동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막내'를 쓸 수가 없다. 직장에서 제일 나이 어린 사람을 파악하기도 싫고, 그 사람에게 숟가락 놓는 잡일을 시키기도 싫고, 나이를 이유로 하대하거나 동정하는 것도 할 수가 없다. 업무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더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건 내 마음속에서 하는 거지, 그를 '막내'라고 부른다고 될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를 그렇게 부르는 순간, 그와 나의 수직 계열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내라고 부르면 좀 더 정겨워지고 더 챙겨줄 수도 있고, 또 가까워진 느낌이라고 느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난 그게 잘 안 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가족 같은 회사'다. 그런 내가 가족관계를 회사에서 부를 순 없지 않은가?)
그러나 물론!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군가 이렇게 '막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지적해 본적은 절대 없다.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고... 나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