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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용 Sep 08. 2019

PT 일기 3 - 201508-09

2015. 8. 7. 오후 9:02

PT선생님: 아파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번에 아파 보니까 회원님들이 아프다고 할 때 깊이 공감이 되더라구요. 역시 사람은 자기가 경험을 해 봐야 진짜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나: 다행이네요. 제가 지금 왼쪽 어깨가 아픕니다.

PT선생님: 더 열심히 마사지 해 드릴 테니까 운동하시죠. 

--- 

나: 운동한다고 맘껏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PT선생님: 만약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가족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 운동 끝나고 나가면 팔에 힘이 없어서 칠판에 마커펜도 못 드는데 누굴 구한단 말입니까? ㅠㅠ



2015. 8. 8. 오후 7:22

PT선생님: (헬스 잡지의 남성 모델 사진을 보여주며) 회원님도 열심히 운동하시면 이렇게 되실 수 있습니다. 지금도 지방만 빼면 근육이 보일걸요?

나: 몸이 좋으면 뭐 합니까? 저같이 얼굴이 못 생기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PT 선생님: (위로하며)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성이 더 중요하죠. 얼굴에 인상 쓰고 다닌 티가 나는 분들 많잖아요.

나: (반갑게) 저랑 생각이 비슷하시네요!

PT 선생님: 운동하세욧!



2015. 8. 19. 오후 7:18

PT선생님:저는 운동 후 근육통이 없으면 내가 뭘 잘못했나 반성하게 됩니다. 

나:저는 반대로 근육통이 있으면 내가 인생에서 뭘 잘못해서 이런 벌을 서나 반성하게 되죠. 제게 근육통이란 늘 벌 받은 뒤에 오는 거였거든요.

PT선생님:저는 벌 받고 근육통 있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나:마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의 운동 버전이네요.



2015. 8. 26. 오후 6:16

PT 선생님: 오늘 영화를 보았는데, 사람은 자신이 가장 괴로왔던 기억은 자동으로 지우는가 봅니다. 

나: 맞습니다. 고통을 다 기억한다면 제가 어떻게 다시 운동하러 오겠습니까? 

-- 

PT선생님: 자 백번 하세요

나: 뭐라고 하셨어요? 100번이요??

PT선생님: 할 수 있습니다. 시작하세요.

(결국 70번밖에 못 함)

PT선생님: 회원님이 대략 70번 정도 할 줄 알았습니다.

나: 그럼 처음부터 70번이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PT선생님: 그래도 일부러 100번이라고 하면서 목표를 높게 잡으면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여러 연구 결과 증명된 사실입니다.

나: 아무리 100번이라고 해도 결국 70번밖에 못 한다는 연구는 없었나 보죠?



2015. 9. 2. 오후 9:05

PT:운동을 며칠 쉬셔서 오늘은 어깨, 등, 가슴, 복부 등 여러 부위를 빠르게 운동시켜드렸더니, 마치 '모둠 회'를 먹은 것 같죠. 

나:제가요? 아니면 선생님이요? 

PT:"제가" 그런 보람이 느껴진다고요. 

나:그래요? 하긴 요 앞 정육식당에도 부위별 모둠 고기 메뉴가 있더라구요. 다음부턴 아예 등심 운동, 안심 운동, 목살 운동 이렇게 부르시지 그래요? 더 보람차게.



2015. 9. 2. 오후 9:11

<선생님 휴가 전>

PT: 이번 휴가는 여자 친구와 함께 남해 바닷가에서 캠핑을 할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되고 설레네요.

나: 저도 두 번이나 빠진다니 너무 설렙니다. 그 시간에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결국은 일하겠지만서두요. 헤헤

PT: 여기 나와서 혼자 운동하시는 건 어때요?

나: 왜요??? 

<선생님 휴가 후>

PT: 운동 못 해서 몸이 근질근질하셨나요?

나: 그럴 리가요.

PT: 많이 쉬셨으니까 오늘은 완전 하드하게 하겠습니다.

나: 저는 그동안 쉰 게 아니라 열심히 일했다구요. 놀러 갔다 온 건 선생님인데 왜 제가 하드하게 해야 하나요. ㅠㅠ



2015. 9. 18. 오후 8:23

PT: 제가 보니 회원님들 유형은 세 가지 정도가 됩니다. 제가 처음에 20번 하라고 하면, A. 철저히 20개만 하는 (칸트) 형 B. 그냥 15개든 25개든 제가 세는 대로 따라 하는 (마니쉬) 형, C. 제가 몇 개를 얘기하든 자기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이노베이터) 형입니다. 

나: 그럼 저는 어떤 형인가요? 

PT: 회원님은 어느 형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만 독특합니다. 방금처럼 20번 하자고 했는데, 10번만 한 다음 천연덕스럽게 그만 두면 저도 잠깐 헷갈려서 원래 10번 만이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기꾼) 형입니다. 

(1. 괄호 안의 별명은 제가 붙인 겁니다. PT선생님은 별명을 지어주지 않았습니다. 2. 칸트는 절대 20개 이상은 안 하지만 한 두 개 빼먹는 건 허용하는 칸트a 형과, 20개보다 적거나 많거나 다 싫어하는 칸트 b 형, 그리고 넘는 건 괜찮아도 무조건 최소 20개는 해야 하는 칸트 c형이 있습니다. 제게 보람을 주는 건 칸트c형이죠.)




2015. 9. 23. 오후 5:50

대학교 때 과외를 할 때면 사실 공부 잘 못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100% 이해하지는 못 했던 것 같다. 

1.

PT: 제가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하나, 둘, 열, 열하나, 스물... 아... 계속하고 싶어서 그만 둘 수가 없네...

vs.

나: 평소에도 하기 싫지만 오늘은 더 하기 싫어요. 운동을 할 때면 언제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2. 

PT: 그러니까 혼자 2번 제가 도와주면 8번 하는 분이, 그냥 도와주어 하면 16번이나 하게 됩니다. 아시겠죠? (눈을 반짝반짝하며 다 아시겠죠? 하는 표정) 

나: (멀뚱멀뚱... 도대체 뭘 알아야 하는 거지???) 

사실 나도 '공부'에 관한 한 참 비슷한 상황이 많았던 것 같다. 과외할 때 학생에게 수학 문제를 풀어 주다 보면, '재미있다'는 생각에 내가 다 풀어 버리는 경험도 있었고, (이 정도쯤은) 알겠지? 하면서 눈을 반짝거렸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ㅎㅎㅎ 

========== 

나: 앞으로 3-4주는 3번씩 못 하고 일주일에 두 번밖에 못 할 것 같아요. 추석, 한글날 등등 공휴일이 많아서요.

PT: (실망하며) 그래요?

나: 너무 실망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세요. 처음부터 일주일에 두 번 하는 회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PT: 그게 그렇게 받아들여지나요?

나: (인생이 원래 그런 거죠...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PT: 그렇다면 오늘은 운동을 더욱 빡세게 해야겠네요. 서킷(Circuit Training, 순환 운동)을 두 바퀴 돌겠습니다. 원래 두 번 하는 회원님들은 이렇게 합니다.

나: 그럼 너무 힘들 거 같아요

PT: 인생이 원래 그런 거죠! (나는 참았던 그 말을...) 

나: 평소에도 하기 싫지만 오늘을 더 하기 싫습니다.

PT: 월요일에 쉬어서 그렇습니다. 너무 많이 쉬면 몸이 힘들죠

나: 쉬면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PT: 지난 번에 회원님이 진화론 이야기하면서 우리 조상들은 모두 사냥하면서 하루 종일 뛰어 다녔다면서요? 그렇게 살다가 지금 맨날 의자에 앉아 있으니까 얼마나 안 좋은 건가요? 앉아 있는 것이 더 힘든 겁니다. 뛰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나: (다시는 진화론 이야기 안 하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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