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Prologue. 그토록 바란 안정이었는데, 왜 나는…

이제서야 '내 것'을 하고 싶은 맘, 사치일까?

by 퇴준생 김머글
KakaoTalk_20250318_214021292.png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느 과에 가고 싶은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떤 과가 있는 지, 그 전공을 하면 어떤 직업을 하게 되는 건지, 나는 뭘로 돈을 벌고 싶은 건지. 일단은 안정적인 공무원이 최고라는 부모님 말씀에 행정학과로 진학했다. 대학 먼저 붙고, 가서 전과를 하든 다른 공부를 하든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보리라.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저마다 발 빠르게 스펙을 쌓아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동기들을 보면서 그 다짐은 저 한 귀퉁이로 절로 치워졌다. 나도 어느샌가 여느 문과 취준생들처럼 ‘어디든 붙여주면 간다’는 마인드로 ‘회사원’이 되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학생에서 취준생이 되었다.


‘묻지마’ 이력서 지원 후 덜컥 붙어 버린 첫 직장을 9개월여만에 그만두고 ‘재취준생’이 되었다. 막연히 공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소속’ 상태로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괜히 그만뒀나 하는 후회와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이렇게 평생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내 밥벌이도 못하는 사람으로 살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신물이 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2019년 현 직장으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고 세 걸음마다 속으로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다닐 정도로 기뻐했다. 불안정의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은 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했다. 다시는 그 불안정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그 불안정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컸었는지 절대 잊지 말자 다짐하며 일기를 썼다. 그리고 7년째 (일단은) 그 다짐을 실천 중에 있다.


작년에는 결혼도 했다. 우리 회사는 ‘육아 휴직을 쓰지 않으면 본전도 못 찾는 회사’라는 말을 회사 동료들과 우스갯소리로 심심치 않게 할 정도로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는 워킹맘·워킹대디에게 매우 친화적인 회사다. 그럼 이제 다음은 출산과 양육을 하면 되는 걸까?


대학생이 된 순간부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오롯이 ‘안정’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위해 몰두했고, 그토록 바랐던 공공기관 취업에도 성공하면서 그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이 곳에서 무사히 밥벌이도 하고 있고, 결혼도 했고 결혼의 다음 단계라고 하는 출산과 양육을 하기에도 최적의 조건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제 와서야 내 걸 찾고 싶은 걸까?




어렸을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지만 업으로 삼을 만큼의 재능도, 흥미도 있지 않았던 터라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그런데 남들은 이제 아이를 낳고 집을 마련하고 재테크에 몰두하고 있는 서른 중반에 와서야 창작의 욕구,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 내가 그린 그림과 캐릭터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꾸만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민원 업무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일까, ‘대퇴사의 시대’니, ‘퍼스널 브랜딩’이니 하는 트렌드에 괜히 나도 분위기를 타는 것일까. 그런데 그 계기가 어찌됐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강해진다. 이렇게 평생을 회사원으로만 살기엔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새로운 결정을 하기는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절절히 보여주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드라마 ‘미생’의 명대사다. 내가 쉽사리 이 안정을 놓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는 가장 결정적 이유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오는 괴로움을 겪어 봤기에, 그리고 나는 그 괴로움에 특히 취약한 성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충동으로 결정했다가는 실패했을 때의 그 대가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는 생각에 두렵다.

그럼에도… 내가 취하고 있는 이 안정된 경로 밖에서도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건데 지레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망설이느라 부딪혀 볼 시간을 까먹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에 이 책을 썼다. 이 만화들을 그렸다. 이 갈팡질팡하는 마음들 속에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이 마음 자체를 재료로 창작하며 해소해 보고자 한다. 두기와 더기의 이야기는 이런 파도와 같은 마음 속에서 탄생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 조금의 응원과 공감이 되길...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