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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린 Apr 29. 2022

시작

전역한 지 두 달이 되었다. 전역 전에는 여행도 가고 공부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하고 싶은 일을 여러 가지 생각해두었다.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다. 다른 때는 소일거리라도 했지만 아직 미복귀 휴가 상태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는 상태여서 그냥 쉬었다.


정확히는 그냥 쉬고 싶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2년 동안 마냥 쉬면서 살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의 삶은 엄연히 일이었고 쉴 틈 없이 나름 바쁘게 살았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휴가마저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랬기에 내가 있던 원래 자리로 돌아오면, 그렇다면 모든 일이 해결되리라 기대했다.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그간의 수고에 대한 보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다.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내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내 주변의 많은 것이 변해버린 이후였다. 사람들은 각자 갈 길을 바삐 떠난 이후였고 과거의 흔적을 더듬어 봐도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보고 싶은 친구들을 불러도 다들 자기 일이 바쁘거나 거리가 멀어져 쉬이 만날 수가 없었다. 2년 동안 나는 멈춰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부지런히 흘러 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덩그러니 과거 속에 남겨 졌다. 이런 외로움에 대해서 어디 토로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다들 내 투정을 들어주기에는 자기 할 일을 하기에도 바빠 보였다.


더욱 나를 곤란하게 한 것은 목표를 상실한 내 자신이었다. 지금 무얼 해야 할지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돌아오면 졸업 논문을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나 이제야 논문을 쓰려고 하니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잘 쓰고 싶다는 의욕마저 없어졌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렇게 두 달을 통으로 쉬었다. 쉬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어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인해 행복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정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초조하고 불안하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고 나 혼자 끄적이려니 정말 한심한...마음이었다.


그래서 이 일이라도 하려고 한다. 딱... 여기까지가 내 바닥이고 이제부터는 움직여 보려고. 매일 한 편씩 글이라도 쓰려고 한다. 아무 내용이라도. 그냥 오늘 밥 삼시세끼 잘 먹었다는 이야기라도. 좀 힘들었다는 이야기라도. 친구를 만나서 반가웠다는 이야기라도. 그렇게 하면 조금은 속이 후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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