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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l 13. 2022

호불호의 계절 여름, 그리고 인생   

유한한 삶의 아이러니, 양면성에 대하여.

여름이 다가온다. 한겨울에 태어난 탓인지 나는 더위에 취약하다. 피부마저 볕에 쉬이 그을리는 데다 원래의 색으로 회복 또한 더디다. 그래서 한낮의 외출을 꺼렸다. 그런데 4살과 6살, 두 어린이와 함께 코로나 시대를 보내자니 한낮의 야외활동은 일상이 되었다. 작년 여름, 과천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을 다녀왔다. 유난히 반짝이던 햇살 아래서 발등에 생긴 샌들 모양의 얼룩은 그해 겨울이 가도록 훈장처럼 남아있었다.   

   

기왕지사 태닝이라도 한 것처럼 경계 없는 구릿빛 피부를 가지리라. 민소매 원피스와 상의 몇 벌을 마련했다. 소풍 전날 밤잠을 설치는 아이의 마음으로 다가올 여름을 기다린다. 자식과 관련한 일이라면 싫은 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현종 시인은 그의 시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이타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양육의 특성에 삶의 양면성, 그 아이러니가 담겨있다.

     


가만히 달력을 들여다보니 5월 30일이다. 9년간의 연애를 끝으로 부부가 된 남편과의 결혼기념일이다. 어쩌면 나는 서른일곱 해를 여름을 싫어한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붉은 악마와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2006년 여름에 연애를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능동적인 활동을 나무늘보처럼 늘어지기만 하는 여름에 뛰어들다니! 누군가에게는 억지스러울지라도 나는 여전히 놀랍다. 대학 동문인 우리는 매일같이 해 질 녘에 만나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캠퍼스를 산책하다 해가 뜨면 헤어졌다. 부엉이와 올빼미처럼 애정을 쌓아온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만났지만, 막상 결혼하려니 기분이 이상하네요.”라고 결혼의 소회를 밝혔다.    

  


예측불허의 인생이다. 요즘 나는 요가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매일 거울 앞의 나와 옆 사람에게 당신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나마스테’라는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인으로서 모범에 가깝게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던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로 두 번의 휴직을 경험하며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와 도태에 힘겨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요가 선생이 나에게 말했다. “잘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요. 어제의 나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죠. 지금 몸의 상태에 집중하세요. 꾸준히 수련하면 아사나(요가어로 자세를 의미한다)를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러니 요가의 매력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 수가 있겠는가.      



부쩍 더워진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수련에 집중하면 전신에 땀이 흐른다. 자연히 마스크와 직접 닿는 얼굴에 만성적인 뾰루지가 생겼다. 여름밤이면 어김없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드는 나를 두고 남편은 타박했다. 술을 마시더니 피부가 엉망이 되었다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운동하느라 그래. 요즘 더워서 땀이 많이 나더라.” 부부의 대화를 듣던 6살 난 아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엄마, 그러면 운동을 가지 마. 덥고 힘들다면서 뭣 하러 운동을 가.”     



그렇다. 여름을 싫어한다기에는 맥주를 앞에 둔 웃음이 무색하다. 땀 흘리는 것도 싫고 더위를 많이 탄다면서도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호불호가 적절하게 뒤엉킨 여름이라는 계절이 꼭 인생 같다. 시간이 흐른 뒤나 혹은 멀리서 보면 크게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여름이다. 즐겨 신는 신발을 꺼내 들고 발톱에 좋아하는 색을 입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가장 빠르게 예약이 가능한 날이 언제인가요?.”      


소설가 김연수는 인생이란 정답지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같다고 했다. 주관적인 삶을 두고 오지선다의 답을 찾으려 애쓰지는 말아야겠다. 코로나의 세계적 유행 속에서 계속되는 휴직에 직업인으로 정체와 도태에 힘겨웠다. 그러나 덕분에 보육공백에 대한 부담 없이 아이를 돌봄에 감사하는 오늘을 보낼 수 있었다. 매 순간 단 한 번 경험하는 삶을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어’하고 회피하기보다는 설렘으로 소중하게 대해야겠다. 사계 속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울 오늘이 헛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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